[취재수첩] "경기 하강 몰랐지만 잘 대처했다"는 정부

입력 2019-09-22 16:52   수정 2019-09-23 08:55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출범 후 각종 지표가 악화할 때마다 “경제 상황이 좋다”는 말을 반복했다.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주중 대사)은 여러 차례 “기다리면 소득주도성장 효과가 나타나 경기가 개선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올초 바통을 이어받은 노영민 비서실장은 한술 더 떠 “경제 상황이 실제로 좋아지고 있다”며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지난 20일 통계청이 “국내 경기가 2017년 9월 정점을 찍고 24개월째 하락하고 있다”는 공식 진단을 내리면서 이런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 하강 국면인데도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로제, 법인세·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을 밀어붙여 가뜩이나 취약해진 경제에 더 부담을 줬다는 비판이 거세졌다. 그러자 정부는 “사전에 경기 상황을 예단해 정책을 시행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마디로 “경기가 이렇게 안 좋아질 줄 몰랐다”는 얘기다. 동시에 “국내 경기 침체는 글로벌 둔화에 따른 현상이고 정부는 개선 노력을 기울여왔다”고도 했다. 경기 하강은 몰랐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모순적인 주장이다.

과연 경기 하강이 예측하기 어려운 재난이었을까. 대내외 기관과 전문가들은 지난해 상반기부터 “경기가 꺾이고 있다”고 경고해왔다. 다양한 지표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다. 이런 목소리를 끝내 외면했던 건 정부와 여당이다.

김광두 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지난해 5월 ‘경제위기론’을 꺼내자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성급하다”고 받아쳤던 게 대표적인 사례다. 기재부는 매달 발간하는 ‘최근경제동향(그린북)’에서 지난해 9월까지 ‘경기가 회복세’라고 평가했다.

경기 둔화에 정부 책임이 없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계 경기 성장세가 2017년 말~2018년 초부터 둔화한 건 사실이다. 문제는 경기 하강폭과 속도다. 한국만큼 고용과 성장률, 투자, 수출 등 모든 지표가 급격히 고꾸라진 곳은 드물다. “정부가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제 등 노동시장에 충격을 가하면서 경기 하강폭을 키웠다”(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정책 취지가 좋아도 나쁜 결과가 도출됐다면 무엇이 문제였는지 짚어봐야 한다. 좋은 지표가 발표되면 “정부의 성과”라며 홍보하고, 나쁜 지표가 나왔을 때 “전(前) 정부의 잘못과 외부 여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면 적절한 대책을 찾기 어렵다.

“자기반성 없이 남 탓만 해선 경제 상황을 결코 개선할 수 없을 것”(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이란 전문가들의 충고를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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