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계는 지난달 25일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1년 유예해 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는 지난해 7월 1일, 300인 이상 사업장부터 적용됐으며, 내년 1월1일부터는 50인 이상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도 확대 적용된다.주 52시간 근로제는 근로자들의 건강권과 ‘저녁이 있는 삶’을 보장한다는 방향성에서는 맞지만 제도 안착을 위한 추진 전략을 마련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한국은 ‘장(長)시간 근로 국가’란 오명을 벗지 못했는데, 산업계에선 좀처럼 그 관행을 개선하지 못했다. 우리 산업의 구조적 문제점 탓이다. 특히 중소기업은 인력 수급 등 문제가 심각해 제도 안착까지는 애를 먹을 것으로 우려된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중소기업 근로시간 단축 관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 중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에 문제가 없다고 답한 사업장은 61.0%에 그쳤다. 준비 중이라는 응답이 31.8%, 준비를 못 하고 있다는 응답은 7.2%였다. 준비를 완료하지 못한 사업장이 거의 40%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주 52시간 초과자가 있는 기업은 17.3%, 이 중 제조업이 33.4%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과자가 연중 상시 발생하는 경우는 46.8%로 집계됐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 현장지원단을 통해 지원하고, 국회에 ‘탄력적 근로시간제’ 등을 포함한 보완입법도 요청하고 있다.
그런데 중소기업의 주 52시간 근로제는 그리 간단하게 안착하지 못할 것 같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능력이 있는 중소기업은 이미 시행하고 있거나 준비가 다 끝났다고 보면 된다. 아직 준비 중인 기업은 도입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당장 시행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이들 기업은 근로시간 단축에 대응하기 위해 추가 고용이나 설비투자를 해야 하는데, 여건이 안 돼 수주량 축소와 사업 규모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계기로 우리 산업의 아킬레스건이 될지 모를 이들 기업을 대거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우리 경제 체질이 이렇게 구조조정된 기업의 노동자를 다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대체 산업기반이 탄탄하다면 그런 주장이 가능할 수도 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탄력근로제로 중소기업의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지난해 말 노동연구원의 탄력근로제 활용실태 조사결과에 의하면 ‘50인 이상 300인 미만 기업’에서 탄력근로제 도입률은 4.3%, 미도입 기업 중 도입 계획이 있는 곳은 3.8%, 그리고 ‘탄력근로제 개선 요구 사항이 없다’는 응답이 49.8%로 나타났다. 탄력근로제가 주 52시간 근로제의 보완책으로 활용될 수는 있지만, 이는 탄력근로제에 적합한 근로방식의 중소기업에만 그렇다. 더구나 주 52시간 상시초과자가 발생하는 중소 제조기업은 탄력근로제도 소용없다.
그렇다면 석 달 앞으로 다가온 300인 미만 중소기업의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은 어떻게 해야 하나. 당장 기업 사정이 어렵다고 주 52시간 근로제란 큰 물줄기를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으로 인한 경제적 혼란이 초래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제도 시행 시기는 내년 1월 1일로 정해졌지만 일본의 수출규제 등 어려운 현실 상황을 감안, 시행을 유예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최저임금 인상도 큰 방향에서 목표 달성 시기를 조정하지 않았는가.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적용할 주 52시간 근로제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 모든 중소기업에 대해 일률적으로 유예하는 것이 어렵다면, 아직 준비 중이거나 준비가 안 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유예하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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