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과 도심 풍경의 접점, 기하학적 추상화로 응축"

입력 2019-10-06 17:34   수정 2019-10-07 03:05

20대 중반 대학 시절 도시와 삶의 공간에 대한 여러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게 미술과의 첫 인연이었다. 붓과 물감으로 도시 풍경을 밤새워 캔버스에 수놓으면서 묘한 흥분과 설렘을 느꼈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항상 건축물과 미술 사이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건설 현장을 누볐다. 2012년 퇴임한 뒤 서울 선릉에 화실을 차리고 직장에서 배운 노하우를 캔버스에 담아내며 화가의 길을 걸었다. 현대인의 생활공간을 선과 색채로 되살리며 기하학적 추상화 영역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화가로 2막 인생을 즐기는 박재영 전 한진중공업 대표(76)의 이야기다.


박 전 대표가 한국경제신문 창간 55주년을 맞아 오는 17일까지 서울 청파로 한경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어번 판타지(Urban fantasy)’를 주제로 국내외 사업현장을 누비며 체험한 건축공간과 풍경을 선과 면, 색으로 응축한 추상화 33점을 걸었다. 60대 후반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아카데미에서 그림을 배우며 건축물과 사람을 이해하고 접점을 찾으려 부단히 애써온 결과물이다. 6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월급쟁이와 경영인에서 화가로 이어진 이모작 인생은 일과 놀이의 경계를 넘나드는 창조적인 세계로의 도전”이라며 “그림을 그리며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그림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이자 후반기 인생의 매듭을 잇는 새 영역에 대한 도전이다. 1968년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한 직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에 입사해 1997년 최고경영자(CEO)까지 오르며 행복한 건축물을 만들고자 노력한 그의 마음은 이제 색채예술로 배어 나온다. 도시와 인간, 자연이 분리되지 않는 동양의 합일사상을 화면에 불러냈다.

평생을 건축공간의 문제에 천착한 그는 요즘 작업실에서 하루 6시간 이상 기하학적인 선과 면, 강렬한 색으로 역동적인 공간을 거침없이 파헤친다. 건축물 이면에 숨어 있는 것을 붓과 물감으로 슬슬 풀어내는 재미가 쏠쏠하단다. 완성작은 100여 점에 이른다. “건축과 미술의 횡단 또는 융합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힘이 납니다. 카지미르 말레비치와 피터르 몬드리안의 추상 세계를 바탕으로 건축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보고 싶습니다.”

추상화라는 회화적 양식에 건축물을 담아내는 그의 그림에는 체험과 현장 이야기가 결합돼 나타난다. 다양한 건물공간을 인문학적으로 해석한 다음, 사각형 화면에 해체하거나 재조립해 올려놓는 식이다. ‘박재영 추상화’의 핵심은 건축물에 대한 자유로운 성찰에서 얻어낸 맑은 시선이다.

그는 ‘직접 설계하고 공사한 수많은 건축물을 화폭에 녹여낸’ 작품을 보여주며 그림에 담긴 스토리를 들려줬다. “잠실 롯데타워는 무분별한 높이 경쟁보다는 건축미와 실용성을 시각화한 겁니다. 예술적 가치와 아름다움도 있지만 건물의 모노크롬에 매료됐어요. 인천공항과 서울 도심, 항구의 풍경도 화폭에 담았고요.” 색과 형태로 눈앞에 펼쳐진 다양한 생활공간과 그 너머 풍경들이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한국건설안전기술사회장을 맡으며 한국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그는 이번 작품 판매 수익금 일부를 연말 불우이웃 돕기에 쓸 예정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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