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과 씨름 50년…"자연 속살 찾아 수없이 헤맸죠"

입력 2019-10-09 16:56   수정 2019-10-10 00:29

서양화가 장지원 화백(74)이 한국의 대표 조각가 권진규 선생(1922~1973)을 처음 만난 것은 홍익대에 재학 중이던 1967년쯤이다. 당시 홍익대 강사였던 권 선생의 서울 돈암동 작업실에서 1주일에 두 번씩, 2개월여 동안 모델을 하며 미술가의 끼와 열정을 배웠다. 중·고교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권 선생의 대표작 ‘지원’도 그때 탄생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선배인 화가 구자승과 결혼한 뒤 캐나다 온타리오 미술대에서 공부하며 세계적인 작가의 꿈을 키웠다. 줄곧 붓과 씨름하며 마치 알몸으로 가시덤불을 기어나오듯 50년의 세월을 불태웠다.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과 한국여류화가회 회장을 지낸 그는 지금도 치열한 자기와의 싸움을 통해 작품을 쏟아내고 있다.

한국 여류화단을 대표하는 화가인 장 화백이 오는 14일부터 다음달 11일까지 경기 성남 앤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다. 4년 늦게 ‘고희전’을 여는 이번 전시의 주제는 자연을 은유한 ‘숨겨진 차원’이다. 꽃과 새, 나무 등을 소재로 마치 작업 일기를 쓰듯 마음속에 숨겨진 자연을 붓끝으로 잡아낸 근작 30여 점을 선보인다.

9일 충주 장호원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치유와 행복의 세계로 인도하는 자연에서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봤다”고 했다. 자연을 ‘귀한 보물단지’라고 단정한 그는 무엇을 그릴지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감성의 그물망에 걸려든 수많은 ‘자연’을 건져 올려 현대인이 놓쳐버린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냈다. 그래서인지 그의 그림은 밝고, 환하고, 소박한 느낌을 준다. 꽃, 새, 나무를 활용한 화면은 마치 행복한 삶의 표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듯 흰색과 연보라, 분홍 등 밝은 색조로 가득하다.

작가는 “자연은 우리에게 ‘느린 노래’를 들려준다”고 강조했다. 남도에 가면 남도 민요가 들리듯이 산과 들, 강에선 잔잔한 현악기의 선율처럼 출렁이는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길 따라 길게 흐르는 산야가 오선지라면 나무와 새, 꽃은 그 위를 자유롭게 노니는 음표인 셈이다.

장 화백은 누구보다 꼼꼼한 작업으로 뼈대를 세우고 살을 붙여 그림을 만든다. 밝고 아름다워 보이는 그림이지만 사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아주 복잡하고 힘든 작업 과정을 거친다. “먼저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주로 사용하면서 그 위에 한지와 우드록을 붙여 이미지를 만듭니다. 그런 후에 아크릴 물감을 덮고 그 위에 옅은 수채화 물감과 물에 섞은 파스텔 가루를 부분적으로 덧칠하죠.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손맛이 살아나는 것 같아요.”

장 화백은 “직장인이 그렇듯 정해진 시간표에 따라 매일 8시간씩 일(그림)에 할애한다”며 “화가의 삶이 작업 과정에도 그대로 묻어나 있다”고 했다.

최근작들은 사람이 등장하면서도 간결한 선과 구도, 색감이 도드라진다. 젊은 시절 경험한 사랑과 이별, 행복을 자연과 병치해 한 편의 소설처럼 꾸몄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감성의 여과 과정을 거쳐 화면에 되살려낸 사람과 자연은 하나같이 밝은 색상 너머로 순진무구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어린아이의 그림처럼 정감이 넘치면서 진부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려는 노력의 흔적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흔을 넘어선 작가는 “캔버스 앞에 앉아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숨 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뭔가 편안한 느낌을 주는 작품에 남은 인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올해 일흔넷입니다. 그야말로 황혼기에 접어든 셈이죠. 이제는 인생을 정리하는 마음 자세로 그림을 그리려고 해요. 하지만 모든 에너지를 죽는 날까지 그림을 위해 다 써버릴 작정입니다. 설치, 사진, 영상 작업 등 아직 더 해보고 싶은 작업도 많고요.” 스스로 황혼기라고 말하지만 그의 예술혼은 늙는 게 아니라 오래 묵은 장맛처럼 숙성해갈 따름이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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