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 물든 '조선의 왕릉' 걸으며…역사의 숨결 만끽

입력 2019-10-29 16:10   수정 2019-10-29 16:11

잦은 비와 연이은 태풍에도 궁궐과 왕릉을 물들이는 단풍은 어김없이 시기를 맞춰 찾아왔다. 단풍이 절정기에 이른 11월에 가을의 정취와 함께 역사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조선 왕릉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조선 왕릉은 조선 왕조의 왕과 왕비 및 사후 추존된 왕과 왕비의 무덤이다. 한 왕조의 왕릉이 이처럼 온전한 형태로 보존돼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대 27대 왕과 왕비의 무덤 총 44기(基) 중 북한 지역에 있는 제릉(태조비 신의왕후), 후릉(정종과 정안왕후), 폐위된 연산군묘와 광해군묘 등 4기를 제외한 40기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왕릉은 유교와 풍수적 전통을 기반으로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건축과 조경 양식, 한국인의 세계관과 장묘문화, 왕실의 장례 및 제례 등을 알 수 있어 문화재로서 가치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 지역에 있는 후릉과 강원 영월에 있는 장릉(莊陵·단종)을 제외하면 나머지 왕릉이 모두 서울과 경기 일대에 조성돼 있다.

광릉 - 세조 유언따라 검소하게 만든 왕릉

경기 남양주시에 있는 광릉은 조선 7대 대왕인 세조(재위 1455~1468)와 부인 정희왕후 윤씨(1418~1483)의 무덤이다. 세종의 영릉이 조선 전기 왕릉 제도를 총정리한 것이라면, 광릉은 조선 왕릉 제도의 일대 변화를 이룬 능으로 평가된다.

수양대군으로 잘 알려진 세조는 세종의 둘째 아들로 형인 문종이 세상을 떠난 후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계유정난을 일으킨 후에 1455년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세조는 군제 개편·집현전 폐지 등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토지제도 정비·서적 간행 등 많은 업적을 남기고, 1468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성종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탓에 정희왕후 윤씨는 조선시대 최초로 수렴청정(나이 어린 임금을 대신해서 왕대비가 정치하는 것)을 시행했다. 정희왕후는 성종14년(1483)에 세상을 떠났다.

왕의 유언에 따라 무덤방은 돌방을 만드는 대신 석회다짐으로 막았고,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못하게 했다. 돌방과 병석을 없앰에 따라 백성의 고통과 국가에서 쓰는 돈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됐다. 무덤 주위에는 난간석을 세우고 그 밖으로 문석인·무석인·상석·망주석·호석·양석을 세웠다. 난간석의 기둥에는 12지신상을 새겼는데 이는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광릉밖에 없으며, 글자로 난간석에 표시하거나 나중에는 24방위까지 새겨 넣었다.

광릉은 왕릉 최초의 동원이강 형식으로 조성됐다. 이전까지 왕과 왕비의 무덤을 나란히 두고자 할 때는 고려 현릉·정릉 식의 쌍릉이나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무덤인 영릉의 형식으로 왕과 왕비를 함께 묻는 방법을 취했으나, 광릉은 두 언덕을 한 정자각으로 묶는 새로운 배치 방식으로 후세의 무덤제도에 영향을 끼쳤다. 광릉 인근 광릉수목원은 다채로운 단풍이 장관을 이룬다.

건원릉 - 억새로 덮인 '태조의 무덤'…고향의 그리움 달래다

건원릉은 조선을 세운 태조(太祖 1335~1408, 재위 1392~1398)의 무덤이다. 9개의 조선 왕릉(건원릉·현릉·목릉·휘릉·숭릉·혜릉·원릉·수릉·경릉)으로 이뤄진 동구릉(東九陵, 사적 제193호) 경내에 있다. 전체적으로 고려 공민왕의 능인 공민왕릉(현릉)을 본떠 만들었으나 고려시대 왕릉에는 없는 곡장(曲墻: 나지막한 담)이 봉분 주위를 두르고 있다. 석물들은 남송 말기의 중국풍을 따르고 있다.

건원릉은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봉분에 억새가 덮여 있다. 고향을 그리워했던 아버지를 위해 태종이 태조의 고향 함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12지신상을 새긴 12면의 화강암 병풍석이 봉분을 감싸고, 봉분 밖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이 둘러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는 왕을 지키는 영물인 석호(石虎)와 석양(石羊)을 4개씩 교대로 배치했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魂遊石)이 있고, 혼유석 밑에는 도깨비가 새겨진 북(鼓) 모양의 고석(鼓石) 다섯 개가 놓여 있다. 봉분 아랫단에는 석마(石馬)가 한 필씩 딸린 문인석 한 쌍이 있고, 그 아랫단에는 역시 석마가 딸린 무인석 한 쌍이 마주 서 있다.

태조는 1408년(태종 8) 5월 24일 창덕궁 광연루 별전에서 숨을 거뒀다. 영의정 하륜(河崙) 등이 산릉지(山陵址)를 물색하다가 그해 6월 28일 현 위치로 결정했고, 7월 5일 충청도와 황해도, 강원도에서 군정(軍丁) 약 6000명을 징발해 7월 말부터 역사(役事)를 시작해 석실을 만들었다. 9월 7일 태종이 백관을 거느리고 빈전에 나가 견전례를 행하고 발인했다.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 조선왕릉동부지구관리소는 억새 절정기를 맞아 다음달 17일까지 건원릉(健元陵) 능침을 특별 개방한다. 일반적으로 조선 왕릉의 능침(陵寢)은 문화재 보존 관리를 위해 일반에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지난해 시범 개방해 좋은 반응을 얻었던 건원릉에 대해서는 올해도 다시 특정 기간에 특별 개방을 하기로 했다.

서오릉 - 조선왕실의 왕릉군…숙종·장희빈 잠들다

경기 고양시에 있는 서오릉(西五陵)은 동구릉 다음으로 규모가 큰 조선왕실의 왕릉군이다. 성종의 친부 의경세자(덕종)와 인수대비(소혜왕후)의 경릉이 먼저 조성됐고, 8대 예종과 계비 안순왕후의 창릉, 19대 숙종의 비 인경왕후의 익릉, 19대 숙종과 제1계비 인현왕후·제2계비 인원왕후의 명릉, 21대 영조의 원비 정성왕후의 홍릉이 차례로 들어섰다.

조선 왕실 무덤은 신분에 따라 구분돼 불린다. 왕과 왕비의 무덤은 ‘능(陵)’, 왕의 생모·왕세자·빈의 무덤은 ‘원(園)’, 대군·공주 등의 무덤은 ‘묘(墓)’다. 서오릉에는 5기의 능 외에 조선 왕조 최초의 ‘원’인 명종의 장자 순회세자 묘 순창원(順昌園), 21대 영조의 후궁으로 사도세자(장조) 어머니인 영빈이씨의 묘 수경원(綏慶園), 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어머니인 희빈 장씨의 묘 대빈묘(大嬪墓)가 들어서 있다.

창릉은 서오릉 영역 내 왕릉으로 조성된 최초의 능이다. 능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으나 봉분 주위에 난간석을 두르고 있다.

헌릉·인릉 - 조선왕권 확립한 이방원의 안식처

서울 내곡동에 있는 헌릉은 조선 3대 태종과 원경왕후 민씨의 능이다. 헌릉 근처의 인릉은 23대 순조와 순원왕후 김씨의 무덤이다.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 번째 아들로 아버지를 도와 조선왕조를 세웠다. 1·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정종 2년(1400년)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토지와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군사제도를 개혁했으며,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등 국정 전반에 대한 개혁을 단행해 조선 초기 민생 안정을 이룩했다.


헌릉은 왕과 왕비의 봉문을 나란히 조성한 쌍릉이다. 무덤 아랫부분은 병풍석으로 둘러쳐 있다. 무덤 형식은 태조의 건원릉을 따라 각 무덤에 12칸의 난간석을 둘러서 서로 연결하고 무덤 앞에는 양석과 호석·문석인·마석 등 여러 석물을 배치했다. 전체적으로 넓은 능역과 확 트인 전경, 정자각 중심의 제향 공간과 능침 공간 사이의 높이 등으로 조선 전기 왕릉의 위엄성을 잘 드러낸다.

진입 및 제향 공간에는 홍살문, 향로, 정자각, 신도비각이 배치돼 있다. 1424년 세운 신도비는 조선 왕조의 왕권을 다졌던 태종의 생애와 업적 등을 기리기 위해 일대기를 새겨 넣은 비석이다. 조선 초기 서예문화 연구 자료로 손색이 없는 금석문이다. 정자각 북서쪽에는 제향 후 축문을 태우는 소전대가 있다. 이는 건원릉(태조)과 정릉(신덕왕후), 헌릉에서만 볼 수 있는 석물이다.

태종은 1420년(세종 2년) 왕비 원경왕후가 왕대비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광주 대모산에 먼저 능을 조성했다. 1422년 태종이 태상왕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원경왕후의 능 서쪽에 능이 조성됐다. 태종은 아버지를 도와 조선왕조를 개국하는 데 큰 공을 세웠으나 후계자 자리를 빼앗기자 정변을 일으켰다. 원경왕후 민씨는 정변이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인릉은 무덤에 병풍석이 없다.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양석과 마석·상석·망주석을 세웠다. 언덕 아래에는 두 개의 비석을 세웠다. 순조는 11세 때 왕위에 올랐다. 나이가 어린 탓에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 등 외척 세력이 준동하고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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