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이어 두산도 철수…'황금알' 면세점 왜 '미운오리 새끼'됐나

입력 2019-10-30 17:22   수정 2019-10-31 03:23


한국 면세점들은 지난 9월 2조2421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월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였다. 한 달 전인 8월의 최대치(2조1846억원)를 경신했다. 올해는 연간 기준 처음 매출 20조원을 넘을 게 확실하다. 외신들은 “한국 면세점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췄다”고 평가한다. 이런 상황과 정반대의 일이 면세점 업계에선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이 속속 면세 사업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월 한화에 이어 두산도 내년 4월을 끝으로 면세점 사업을 접기로 했다. 한국 면세점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황금알 낳는 거위 배는 누가 갈랐나

2015년 서울에는 여섯 곳의 시내면세점이 있었다. 이 숫자는 2016년 9개, 2017년엔 10개로 늘었다. 올 들어선 13곳이 경쟁했다. 이전까지 면세점 숫자를 철저히 통제하던 정부가 대거 추가 허가를 내주면서다.

정부가 면세점을 늘려주며 내세운 명분은 ‘외국인 관광객 편의 제공’이었다. 중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던 시기다. 정부는 내심 롯데, 신라 두 곳이 장악하고 있던 시장 판도를 바꾸고 싶어 했다. 특허만 새로 내주면 신규 사업자가 롯데, 신라만큼 잘할 것으로 판단했다. 공공연히 ‘면세점 특허’를 ‘면세점 특혜’라고 불렀다. 면세점 사업을 그만큼 ‘쉽게’ 봤다.

정부는 2015년 7월 서울 시내면세점 세 곳에 특허를 줬다. HDC신라, 한화, SM 등 세 곳이 따냈다. 그해 11월 추가로 신세계와 두산에도 특허를 부여했다. 이듬해인 2016년 12월에는 현대백화점 차례였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던 면세점의 배를 그렇게 갈랐다.

사드가 바꿔놓은 판도

새 면세점들이 문을 열 때만 해도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2015년 말 HDC신라가 용산 아이파크몰에서, 한화갤러리아가 여의도 63빌딩에서 각각 영업을 시작했다.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두타면세점 등도 그 뒤를 따랐다.

금세 자리를 잡는 듯했다. 중국인 단체관광객(유커)이 쏟아져 들어온 영향이었다. 여행사에 수수료만 쥐여 주면 유커를 태운 버스를 면세점 앞에 세웠다. 유커는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쓸어 담았다. 화장품, 미용기기, 밥솥 등이었다. 루이비통, 샤넬 같은 해외 명품 없이도 장사할 만했다.

그러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가 터졌다. 2017년 3월 중순 일이다. 유커가 뚝 끊겼다. 면세점들이 세워놓은 사업계획은 틀어졌다. 유커 아니면 대안이 없었다. 면세점들 ‘실력’은 그렇게 드러났다. 경쟁력 있는 면세점과 그렇지 않은 면세점으로 갈렸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등 3대 명품과 럭셔리 브랜드가 있고, 입지가 좋고, 영업 노하우를 쌓은 면세점은 타격이 덜했다. 기존 사업자인 롯데와 신라가 그랬다. 신세계도 그동안 쌓은 명품업체들과의 관계로 어려운 시기를 돌파했다. 나머지 면세점은 대책 없이 매출 급감을 보고 있어야 했다.

따이궁은 양날의 칼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인 보따리상(따이궁)이 국내 면세점을 먹여 살렸다. 매출의 약 70%가 이들로부터 나왔다.

보따리상은 과거보다 더 많이 물건을 샀다. 국내 면세점들은 총액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계속 냈다. 하지만 실속이 없었다. 면세점 간 경쟁이 치열해져 이들에게 돈을 더 쥐여줘야 했다. 100만원어치를 사면 약 20만원을 돌려주는 식이었다.

한화, 두산 등 신규 면세점도 이런 영업을 했다. 두타면세점이 거둔 작년 매출 약 6800억원은 이렇게 나왔다.

올 들어선 따이궁 유치마저 쉽지 않아졌다. 따이궁은 점점 기업화됐다. 중국 정부가 따이궁에 세금을 물리고, 통관 절차를 철저히 지킬 것을 주문하자 소규모 따이궁은 확 줄었다. 과거엔 5000여 개 따이궁이 활동했다면 지금은 100곳 정도만 영업한다. 이들을 관리할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었다. 해외 명품 등 브랜드를 갖추고 있고,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할 수 있으면서, 기존 네트워크를 끈끈하게 유지하고 있는 롯데, 신라, 신세계 등이다.

판만 벌여놓으면 장사가 될 줄 알았던 면세점 사업. 이 사업이 실은 롯데, 신라, 신세계처럼 그룹 오너가 직접 나서 명품업체와 장기간 신뢰를 쌓아야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두산과 한화가 보여줬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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