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시낭송콘서트에 몰리는 사람들

입력 2019-11-07 17:30   수정 2019-11-08 00:22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앉아 있거나/ 차를 마시거나/ 잡담으로 시간에 이스트를 넣거나/ 그 어떤 때거나//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그게 저 혼자 피는 풍경인지/ 내가 그리는 풍경인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사람이 풍경일 때처럼/ 행복한 때는 없다.’

무대 왼쪽에 작은 탁자와 찻잔이 보인다. 오른쪽에는 벤치가 놓여 있다. 은은한 조명 아래 피아노와 바이올린·첼로 선율이 흐르고, 정현종 시 ‘사람이 풍경으로 피어나’를 낭송하는 목소리가 관객들을 어루만진다. 그제 저녁 전북 익산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김경복 시낭송콘서트’는 한 편의 뮤지컬 무대 같았다.

시낭송 전문가 김경복 씨는 시와 짧은 산문 20여 편으로 인생의 사계를 펼쳐보였다. 유자효 시 ‘꽃길’로 문을 연 1막에서는 벚꽃처럼 화사한 젊음의 순간을 시와 음악에 담아냈다. 2막에서는 부모가 돼 자식을 떠나보내는 과정, 3막에서는 나이 들수록 깊고 두터워지는 삶의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짧은 문장 긴 울림에 객석 '눈물'

그가 벤치에 앉아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유치환 시 ‘그리움’과 강우식 시 ‘어머니의 물감상자’를 낭송할 때는 객석이 숨을 죽였다. 어머니를 그리는 정채봉 시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과 전봉건 시 ‘뼈저린 꿈에서만’이 이어지자 관객들이 손수건을 꺼내들었다. 가슴 뭉클한 감동의 밑바닥으로 애절한 음조의 해금과 기타의 화음이 잔잔하게 깔렸다.

2막과 3막 사이에는 김씨의 딸과 아들이 깜짝 출연해 양희은의 ‘엄마가 딸에게’를 낭송과 노래, 랩으로 합송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젊은 소리꾼의 국악과 무용수의 춤도 무대를 달궜다. 콘서트가 끝난 뒤 한참이나 자리를 떠나지 않던 관객들은 공연장 바깥 단풍잎들이 달빛에 젖는 모습을 보고 또 한 번 탄성을 질렀다. 김씨는 올 들어 경기 구리아트홀과 대구문화예술회관 등에서 여러 차례 시낭송콘서트를 펼쳤다. 입장료가 3만원인데도 표가 매진됐다. 관객들의 요청이 잇따르자 전국 투어에 나섰다.

이처럼 시를 낭송·노래·춤으로 입체화하는 무대와 함께 공연장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시의 날’인 지난 1일 시인 나태주 씨와 배우 최불암 씨가 서울 명동 M플라자 해치홀에서 펼친 명동시낭송콘서트에도 많은 사람이 몰렸다. 강원 춘천과 충남 논산, 경북 상주 등에서 열린 시낭송콘서트 또한 100~200여 명씩 참여했다. ‘제1회 수원 화성 세계 시낭송축제’에서는 국내외 시인 17명이 시민들과 손잡고 다국적 축제를 즐겼다.

티켓 매진 행렬…전국 투어까지

최근 러시아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해외 이육사문학제’에는 고려인 400여 명이 참여했다. 시마을낭송작가협회의 남기선·조정숙 씨 등이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 펼친 ‘한국 시낭송 축제’에도 현지인 250여 명이 모였다. 전국 규모의 시낭송대회 또한 열기를 더하고 있다. 재능문화와 한국시인협회가 주최한 재능시낭송대회에는 올해 성인부 1차 예선 참가자만 993명에 달했다.

시는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준다. 시를 낭송하면 시각과 청각이 동시에 자극된다. 낭창낭창한 목소리를 따라 머리와 몸을 가볍게 흔들다 보면 신체감각이 활성화되고 눈과 혀, 입술, 성대까지 살아난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 손과 손을 마주잡고 시 두레밥상에 둘러 앉아 낭송 콘서트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은 아름답다. 오는 16일에도 경북 포항 대잠홀에서 권양우 씨 등 포항시낭송협회 식구들이 ‘사랑으로 오는 것들’이라는 주제의 시낭송콘서트를 연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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