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언론 피하지 않는 일본 지도자들

입력 2019-11-14 18:29   수정 2019-11-15 00:05

“뒤쪽에 하얀 셔츠 입은 분, 질문해 주세요.”

지난 6일 일본 도쿄 로열파크호텔에서 열린 소프트뱅크그룹의 올 회계연도 2분기(7~9월) 실적발표회에 참석한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의 얼굴색은 흙빛이었다. 1981년 창사 이래 최대 규모라는, 분기 7조원(약 7043억엔) 넘는 거액의 적자를 본 탓인지 그의 해명은 장황했다. 트레이드 마크인 자신만만한 패기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2시간 넘게 이어진 설명회에서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 실적에 큰 타격을 입힌) 위워크가 일반 부동산 업체와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달라’는 등의 날선 질문에도 성실하게 답변했다. 손 회장뿐 아니라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 사장,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사장, 나카니시 히로아키 게이단렌 회장 등 일본 경제계 주요 인사는 정기적으로 기자회견 자리를 마련해 시중의 여론과 비판을 접한다. ‘은둔 경영’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재계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이슈마다 취재 응하는 日 총리

경제계뿐 아니라 일본 정계 리더들도 언론과의 접점이 넓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매일 출퇴근길에 선 채로 10여 분 동안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응답한다. 한두 해 전만 해도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새벽 6시가 되기 전 부스스한 얼굴로 TV 화면에 등장해 일본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 같은 일본 총리에 대한 언론의 밀착취재 관행은 ‘부라사가리’라고 불린다. ‘매달리다’라는 뜻의 ‘부라사가루’라는 동사에서 파생됐다. 어떤 사항을 물을지 사전 조율은 불가능하고 질문 내용에도 제약이 없다. 부라사가리 답변을 보면 국정을 얼마나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총리의 ‘내공’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총리뿐 아니라 주요 각료도 2주에 한 번꼴로 기자들 앞에 선다. 정해진 답변을 앵무새처럼 되뇌거나 얕은 밑천을 드러내는 일도 없지 않지만 어쨌든 언론과 국민 앞에 서서 정책을 홍보하고 정책 책임자로서 구상과 각오를 밝힌다.

불통 딱지 못 뗀 文 정부

일본에 대해 ‘언로가 막힌 민주주의 후진국’이란 인상을 지닌 한국인이 적지 않다. 대를 물려 국회의원을 하는 모습을 보거나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정부 정책에도 군소리 없이 고분고분 따르기만 하는 기업과 국민을 접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각계 지도자들이 사회와 소통하는 방식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일본이 한국에 비해 민주주의가 뒤처진 사회라고 비웃을 수 있을지 자신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한 해에 한두 번 열릴까 말까 한 상황이다. 말 그대로 ‘연례’ 기자회견이 됐다. 심지어 장관 중에는 기자들의 질의응답 요구를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발표문만 읽는 ‘나홀로 기자회견’을 감행한 이도 있었다.

주요 정책의 집행 과정은 더 심각하다. 최근에는 수많은 이해당사자가 얽힌 교육정책과 관련, 여론수렴 과정도 없이 자사고·외고 폐지가 ‘뚝딱’ 결정됐다. 탈원전 정책, 소득주도성장 등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주요 결정 과정도 비슷하다.

‘소통’ ‘민주주의’라는 게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란을 마련했다고 달성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본을 비웃기에 앞서 일본 사회가 구축한 지도자와 국민 간 소통을 정례화하는 방식이라도 우선 수용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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