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강력한 기마군단에 정예 수군…고구려는 '해륙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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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9-11-15 18:10   수정 2019-11-16 00:08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강력한 기마군단에 정예 수군…고구려는 '해륙국가'였다


고구려는 광활한 만주 벌판을 달리던 기마민족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약소국의 설움 속에서 우리가 꿈꾸고 닮고 싶었던 나라의 이미지다. 일본 학자 에가미 나미오가 주장한 ‘기마민족국가설’이 불을 지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고구려는 뛰어난 무장력을 갖춘 기마군단을 운용하는 동시에 정예 수군과 왕성한 해양활동으로 이름난 ‘해륙국가’였다.

한반도에선 20세기 초까지도 큰 배가 다닐 수 있는 18개의 강을 이용해 교통과 물류가 발전해왔다. 만주는 서북쪽 일부 초원과 건조 지대를 빼놓고는 송화강, 요하, 흑룡강, 모란강을 비롯한 60여 개의 강에서 큰 배들이 다녔다. 비록 사료에는 없지만 자연환경, 역사적 상황, 주변의 유적과 유물들을 보면 고구려 시대에도 강상(江上) 수군이 활동했다. 훗날 조선시대에 와서도 효종이 청나라에 파견한 병사들은 러시아군과 송화강에서 수상전투를 벌여 승리했다. 1930년대 초 일본군은 흑룡강에서 강방함대(일본 관동군의 함대)를 운영했다.

3세기 오나라와 해상무역

고구려는 원조선의 능력을 계승한 데다 전기부터 한반도의 북부와 남만주 일대를 영토로 삼았기 때문에 요동만과 서해 북부, 동해 북부에서 활발한 해양활동을 벌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장거리 항해를 하고 국제적으로 활동한 사례는 3세기 전반에 처음 나타난다. <삼국지>의 주역인 조조, 유비가 차례로 죽고 손권이 위나라와 전쟁을 벌이던 233년, 동아시아 국제질서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고구려는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오나라에 값비싼 담비가죽 1000장, 할계피(꿩가죽), 전략물자인 각궁(고구려의 활) 등을 보냈으며 두 나라는 우호관계를 발전시켰다. 제갈량이 죽기 1년 전인데, 그가 동이(고구려)를 의식한 인물이었으므로 이 일을 알았을 가능성이 있다. 235년에는 고구려가 말을 수백 필 주었는데, 오나라는 사신선이 작아 80필만 싣고 갔다.

이후에도 해양력이 작동한 사실은 여러 번 있었지만 결정적 사건들은 광개토태왕 때 나타났다. 고구려사 700년은 중국 지역에서 명멸한 짧은 역사의 국가들은 물론이고, 신라의 1000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의미가 크다. 이처럼 큰 나라를 완성하고 장기간 발전시키려면 뛰어난 국가정책을 입안하고 실천해야 한다.

발전기에 들어선 고구려는 남만주 일대와 한반도 북부 지역을 차지하면서 군사력이 강력한 서북방의 유목종족, 정치력과 문화가 뛰어난 서남방의 중국세력, 동북방의 말갈계와 선비계, 그리고 남쪽에서 백제, 신라 등과 국경을 마주했다. 이런 포위망을 풀고 여러 나라를 이용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divide and rule) 전략을 취하려면 기마군단을 활용하는 동시에 강력한 수군선단이 필요했다. 더구나 풍부한 말, 모피, 활, 인삼, 철 등의 자원을 수출하려면 육로 교통망과 해양 교통망을 연결한 해륙 네트워크의 허브여야 한다. 이런 국가 목표를 가장 적확하게 꿰뚫고 실천에 옮긴 이가 바로 광개토태왕과 그의 아들 장수왕이다.

광개토왕·장수왕의 해양 진출

역사에선 ‘시대상황’이라고 손쉽게 표현하지만, 때로는 ‘천운’이란 것이 있다. 두 임금이 재위한 100년(22년+78년) 동안 중국 지역은 ‘5호16국 시대’와 ‘남북조 시대’라는 대분열기였다. 육지는 물론이고 바다도 갈라졌다. 한편 강력해진 백제는 경기만의 영향력을 강화하며 서해를 건너서는 양쯔강 하류의 동진과 교류하고 남해를 이용해서는 왜에 진출하고 있었다. 가야와 신라는 아직 약체국가였다.

태왕은 즉위하자 동서남북으로 공격을 펼치는 한편으로 외교관계도 맺었다. 원년에는 백제의 해양거점이었을 관미성(강화도설, 오두산성설이 있음)을 함락해 한강 하구와 경기만의 백제 함대를 무력화시켰다. 이어 396년에는 수군을 주력군으로 ‘한강수로 공격작전’ ‘인천 상륙작전’ ‘남양반도 상륙작전’을 성공시켜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 58개 성을 점령했다. 연안의 제해권은 물론이고, 서해 중부 이북의 해상권을 차지했다. 이어 수도를 포위·압박한 후 백제의 항복을 받고 개선했다. 또한 압록강 하구인 서한만, 요동만, 묘도군도 일대와 동쪽의 장산군도 등에서 활동했으며 재위 20년째인 410년에는 훈춘, 포시에트, 블라디보스토크 등이 있는 두만강 하구와 연해주 일대까지 장악했다.

광대해진 영토를 물려받은 장수왕은 꾸준히 요서를 공략하는 한편 북연과 북위, 송나라가 벌이는 중국의 질서재편전에 참여해 국가의 위상을 크게 높였다. 427년에는 400여 년 동안 북방 진출의 거점이었던 국내성을 떠나 수도를 평양으로 옮겼다. 1866년에도 미국 기선인 제너럴셔먼 호가 입항한 서해와 연결된 항구도시인 평양은 남진정책을 강화하는 동시에 해양 진출과 해양 외교를 유리하게 추진하는 교두보였다.

장수왕은 475년 백제 수도인 한성을 점령한 뒤 남진을 계속했다. 서쪽은 금강 이북과 대전 일부 지역을, 동쪽은 경북의 순흥 안동 청송을 지나 영해까지 영토로 삼았다. 481년에는 포항 외곽까지 공격해 육지 영토를 넓혔다. 동해 중부 이북, 서해 중부 이북, 요동만에서 해양력을 강화했고, 전략적으로 가치가 높은 경기만을 안정적인 내해로 삼아 평양, 강화, 남양(화성시) 등을 항구로 삼았다.

불가사의한 해양경영 능력

서해를 중심으로 한 동아지중해 각국의 해상권 다툼도 치열했다. 북위는 480년 고구려가 남제에 파견한 사신선을 나포했으며, 6세기 초에는 남제가 고구려 안장왕에게 파견한 사신선을 나포하기도 했다. 고구려가 서해 해상을 봉쇄한 적도 있었다. <위서> 백제전에는 백제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에서 고구려가 펴는 일종의 해상봉쇄에 위기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고구려는 무역 규모가 컸을 뿐 아니라 황금, 은, 모피, 무기, 말, 인삼 등 수출품의 질도 뛰어났다. 제주도(涉羅)에서 ‘가(珂)’라는 보물을 구해 북위와 무역하기도 했다.

4세기부터는 일본 열도와도 교류했다. 지금도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 시마네현 지역의 이즈모 등에는 고구려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북한 사학자 김석형의 설). <일본서기>에는 장수왕 75년에 왜인들이 고구려와 내통한 내용을 포함해 모두 12번에 걸쳐 고구려에 사신을 파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에 고구려는 중국 지역, 북방 지역, 일본 열도 등과 전투, 외교, 무역을 병행하는 해륙국가로 변신했다. 북방의 유연, 중국의 남북조와 함께 ‘동아시아 4강’ 체제를 이뤘다(윤명철 <고구려 해양사연구>).

그렇다면 고구려의 조선술과 항해술은 어느 정도 수준이었을까? 고구려는 남북조 모두에 사신을 자주 파견했는데, 남조와 교섭하는 빈도가 항해조건이 훨씬 나은 백제보다도 많았다. 장수왕은 송나라가 북위와 충돌할 때인 439년, 다른 화물과 함께 군수물자인 말 800필을 대선단에 실어 보냈다. 북위의 해상봉쇄와 공격을 피해 서해를 종단하거나, 서해 북부 해안을 근해 항해하다가 양쯔강을 거슬러 지금의 난징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무려 1200㎞ 이상 되는 거리다. 12세기경 바이킹조차 자신들의 롱십(longship)에 군사 44명과 군마 두 필만 적재할 수 있었다. 말을 타고, 뗏목으로 바다를 여러 차례 항해해본 나에게도 고구려의 기마군단과 해양능력은 불가사의하기만 하다.

고구려의 ‘부활’을 꿈꾸며

통일과 강한 나라를 결코 원하지 않는 4강 대국에 포위된 데다 남북한 간의 적대감, 한국 내부의 분열, 멀어져가는 국제감각, 약화되는 군사력, 불신받는 정치인과 관리, 군인, 학자들. 우리의 이 같은 현실에서 고구려의 역사는 숙고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고구려는 우리에게 어떤 정책모델을 제시할 수 있으며, 광개토태왕과 장수왕은 어떤 지도자상을 반추해보게 할까?

산업을 발전시키고 동아시아 물류 허브가 된 나라. 백성의 신뢰를 받는 지도자들이 국제관계의 중핵에서 성숙하고 자의식에 충실한 문화를 일군 나라. 나는 이 같은 고구려의 부활(refoundation)을 꿈꾸며 ‘동아지중해 중핵조정 역할’과 통일을 뛰어넘은 ‘해륙국가의 완성’이라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한국해양정책학회 부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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