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와 국민연금은 지난 13일 공청회를 열어 이 지침을 공개했다. 이달 말까지 확정해 바로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모호한 잣대들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주주권행사 요건 중 하나인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이 대표적인 깜깜이 조항으로 꼽힌다. 정부는 포커스리스트로 불리는 국민연금의 중점관리기업 선정 기준으로 △기업의 배당정책 △보수한도 적정성 △법령상 위반 우려로 기업가치 훼손 등을 제시했다. 비공개 대화와 비공개 중점관리, 공개 중점관리 등 절차를 거쳐도 개선되지 않으면 주주제안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각 절차는 1년 단위로 이뤄지는 만큼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요구를 검토하고 의견을 개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과정을 단숨에 건너뛰는 예외 조항이 있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사안’이다. 지침은 예상치 못한 우려사안을 △기금운용본부의 기업에 대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평가에서 등급이 2등급 이상 하락해 C등급 이하에 해당하거나 △ESG와 관련해 예상하지 못한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가 발생한 경우로 규정했다. 판단 기준으로는 주주제안의 실효성, 비용효과성, 시장에 대한 상징적 의미 등을 들었다.
한 대기업 상장사 임원은 “상징적 의미, 기업가치 훼손, 우려사안 등 국민연금이 내세우는 판단 기준이 지나치게 모호하고 주관적”이라고 했다. 그는 “이런 평가 기준으로, 그것도 비공개 평가를 통해 국민연금이 사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반문했다.
기준도 등급도 깜깜이
더 큰 문제는 예상치 못한 우려사안을 결정짓는 핵심 조건인 ESG 평가 기준과 등급 산정 결과가 철저히 비공개에 부쳐진다는 점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수탁자책임실은 연간 두 차례의 정기평가와 수시평가를 통해 투자 기업을 6개 등급으로 나눈다. 공식적으로 공개된 평가지표는 환경, 사회, 지배구조 각 분야를 합쳐 총 52개지만 ‘논쟁적 이슈’도 반영한다고 명시했다. 논쟁적 이슈란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는 사건이나 쟁점을 의미한다. 기업에 대한 당국의 수사 등이 대표적 사례다. 평가 하위 5~6등급인 C~D등급 기업은 지난해 기준 국민연금의 전체 투자 기업 873곳 중 27.9%에 달했다.
국민연금에 과도한 재량권
이 밖에도 지침 곳곳이 기업 경영 간섭을 정당화하기 위한 자의적 기준으로 채워져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주주권행사 요건으로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익을 침해할 ‘우려’, ‘합리적’ 배당정책, 임원보수한도의 ‘적정성’ 등 범위를 한정할 수 없는 단어를 동원해 국민연금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기업 경영에 자의적으로 간섭할 수 있는 길을 열려고 한다는 지적이다.
곽 교수는 “기업 경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인력도 제한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기업 결정의 합리성이나 적정성을 언제나 옳게 판단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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