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여성들의 달달한 첫 로맨스 '키다리 아저씨'

입력 2019-11-28 18:20   수정 2019-11-29 00:11

고아원에 있는 제일 큰 언니 제루샤 애벗에게 어느 날 엄청난 사건이 벌어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후원자가 그녀의 글을 읽고는 재능을 발견했다며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단, 조건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편지를 써야 하고, 후원자가 누구인지 알려 하면 안 된다는 것. 멀리서 흐릿한 그림자만 보고 그녀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 후원자의 별명을 정한다. ‘Daddy Long Legs’, 바로 ‘키다리 아저씨’다.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는 소설 원작 작품이란 의미인 ‘노블컬’(novel+musical의 합성어) 계열이다. 모든 여성의 첫 로맨스라는 별칭으로도 유명한 ‘키다리 아저씨’는 고아 소녀 제루샤가 후원자 키다리 아저씨의 도움으로 대학에 진학한 뒤 꿋꿋하게 자신이 원하는 일과 사랑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정체를 밝히지 않은 후원자에게 시시콜콜한 경험까지 모두 적어 편지로 보내는 소녀의 모습이 때로는 흐뭇하고, 때로는 안쓰럽다. 그러나 시종일관 밝고 희망 넘치는 삶에 대한 열정에 미소 짓게 하는 전형적인 성장 소설이다.

책을 읽는 독자들은 키다리 아저씨의 존재를 알고 있지만 소설 속 여주인공은 그 정체를 알지 못하는, 그래서 전지적 작가 시점의 독자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아쉽고 안타깝게 하는 재미가 매력적이다. 뮤지컬 무대에서는 그 소설의 재미가 2인극의 형식적 틀을 이용해 효과적이고 집중력 있게, 매력적이고 흥미롭게 구현된다.

미국 소설가 진 웹스터가 책으로 발간한 것은 1912년이다. 요즘에는 아동문학으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면밀하게는 성장 스토리로 구분하는 게 적합하다. 소설은 두 개의 구조로 이뤄져 있다. 1부 ‘우울한 수요일’에서는 어둡고 우울한 고아원 생활이 주로 묘사되고, 2부 ‘키다리 아저씨 스미스 씨에게 보낸 제루샤 애벗 양의 편지들’은 고아원을 벗어나 대학이라는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워가고 우정을 키워가는 제루샤의 일상과 그 속에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서간체로 그려진다.

뮤지컬에서는 2부 내용만 등장한다. 서간체의 형식적 재미를 고스란히 담아내 흥미롭다. 서간체 소설을 무대용 뮤지컬로 꾸몄다는 점에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일맥상통한다. 그러나 서간문의 형식적 틀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뮤지컬 ‘베르테르’와 차이가 있다. 물론 키다리 아저씨가 누구인지 밝혀지는 극적 반전과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로맨스 역시 무대를 즐기는 묘미가 된다.

처음부터 제루샤 역으로 출연한 메간 맥기니스도 화제다. 그는 ‘레미제라블’에서 에포닌으로 브로드웨이 무대에 섰던 인기 여배우다. 유명 배우가 초기 개발 단계부터 참여해 자신의 예술가적 이미지와 배역의 완성도, 역할을 효율적으로 완성하는 사례는 서구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라 부럽기만 하다.

뮤지컬에서는 편지가 요즘 말로 ‘열일’한다. 한 소절씩 내용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머문다. 제루샤가 편지를 쓰며 읽는 노래와 제레비스가 편지를 읽으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얽히며 이 작품만의 독특한 재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질투에 사로잡혀 비서 이름으로 답장을 쓰는 제레비스의 모습이나 한 수 먼저 움직이며 키다리 아저씨의 방해(?)를 예단하는 제루샤의 기지는 특히 재미있다. 오래 기억될 만한 따뜻한 뮤지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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