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청년장려금 퍼주다보니…정부, 공공어린이집 '예산 전액삭감'

입력 2019-12-01 17:22   수정 2019-12-02 01:23

서울 강서구 지하철 5호선 화곡역과 우장산역 사이. 두 역으로부터 각각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강서구 공공직장어린이집’에는 영유아 95명이 보육교사 18명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 지상 2층(786㎡) 규모의 이 어린이집은 교실은 물론 놀이시설까지 갖췄으며 오후 9시30분까지 연장보육, 토요일 보육도 가능하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들이 입소문을 듣고 이 어린이집을 찾아 인근으로 이사까지 오는 경우도 있다.

2018년 12월 개원한 강서구 공공어린이집은 정부가 추진해온 ‘거점형 공공직장어린이집’ 1호다. 2021년까지 경기 시흥, 전북 임실 등 12곳에도 문을 연다. 하지만 이후에는 추가 건립 계획이 없다. 정부가 공공어린이집 재원인 고용보험기금 고갈 우려를 이유로 내년 예산(1차분 84억원)을 전액 삭감했기 때문이다.


일자리자금 주느라 보육 사각지대 외면

1일 고용노동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에서 거점형 어린이집 사업 예산은 전액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초 정부는 2018년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2022년까지 전국 50곳에 공공어린이집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계획대로 지난해 서울 강서구를 비롯한 세 곳을 선정했고, 올해 추가로 열 곳을 지정해 공사를 벌이고 있다. 하지만 내년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되면서 이미 지정된 13곳 외에 이후 추가 건립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공공어린이집 사업은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여야 모두 증액 또는 최소한 유지해야 할 사업으로 언급할 정도로 호응이 높다. 그럼에도 정부가 국회 예산심사도 받기 전에 알아서 삭감한 것으로, 재원 고갈 우려 때문이다. 공공어린이집은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하면 총 사업비의 80%를 국가가 지원하는 방식이다. 지난해 163억원, 올해 400억원의 예산이 책정됐다.

문제는 관련 예산을 고용보험기금에서 끌어다 쓴다는 점이다. 해당 사업의 예산은 연간 400억원 수준이지만 고용보험기금에서 나가는 일자리안정자금, 청년추가고용장려금 등 현금 복지 수요가 폭증하면서 공공어린이집 사업에 ‘불똥’이 튄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고용보험기금이 부족한 것도 예산이 삭감된 원인이지만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 등 범정부 차원의 공공보육 정책의 일환으로 안다”며 “내년 이후 추가 지정 여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내년 고용보험기금은 총 14조1048억원 수입에 지출은 15조5484억원으로 1조4436억원 적자가 날 것으로 전망됐다. 고용보험기금은 실업급여 계정과 고용안정·직업능력개발 계정으로 나뉘는데 실업급여 계정의 고갈 우려에 지난달 이미 보험료율이 인상(1.3%→1.6%)됐다. 일자리안정자금 등의 재원인 고용안정계정도 신청이 폭주하면서 적립액은 법정 적립배율(1~1.5배)의 절반 수준에 그치고 있다.

“총선 앞두고 표밭 의식해 폐지”

정부가 공공어린이집 사업을 사실상 폐기한 것은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결정이라는 지적도 있다. 공공어린이집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저출산으로 원아 모집에 애를 먹고 있는 민간 어린이집들이 지자체에 항의 방문하는 등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 여당으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주민 반대로 부지 확보가 힘들다 보니 궁여지책으로 지자체장이 쓰는 관사를 공공어린이집 용도로 내놓는 경우도 있다. 지난 6월 후보지로 선정된 전북 임실군은 임실·신평 농공단지 등이 조성됐으나 공공어린이집이 없어 근로자들이 보육을 위해 인근 전주로 빠져나가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어린이집 부지를 구하지 못한 임실군은 군수가 사용하는 관사를 내놓기로 했다. 현재 공사 중인 임실군 공공어린이집은 2021년 3월에 문을 연다.

사업 주관기관인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거점형 공공어린이집 사업은 포퓰리즘 논란에서도 자유로운, 저소득층을 위한 타깃형 복지”라며 “더 확대돼야 할 정책이 시작 단계에서 좌초돼 안타깝다”고 말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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