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키운 지자체 복지경쟁…'무상교복' 어느새 전국 확산

입력 2019-12-09 17:37   수정 2020-10-25 15:52


중·고교생에게 교복비를 지원하는 ‘무상 교복’ 정책이 내년 충북과 강원을 포함한 12개 광역지방자치단체로 확대된다. 개별 학교의 교복 개편 작업으로 시행이 연기된 서울도 2021년부터는 교복비 지원이 시작될 전망이다. 여기에 드는 예산은 2033억원에 이른다. 9일 사회보장위원회에 제출된 각 지자체의 복지정책과 지방교육청의 내년 예산안을 취합한 결과다.

2015년 8월 경기 성남에서 교복비 지원이 처음 시행될 당시만 해도 정부가 제동을 걸어 논란이 됐지만 어느새 전국으로 확산된 것이다. 교복비 지원을 하지 않는 광역지자체는 대구와 광주, 경북, 경남만 남아 오히려 ‘비정상’으로 보일 지경이다.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거치며 여야를 가리지 않고 모든 후보가 “아이들이 입는 것도 책임지겠다”며 공약 경쟁을 한 결과다. 그동안 “어려운 이들에게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게 맞다”던 정부도 지방선거 4개월 전 기존 입장을 뒤집었다.

정부가 손을 놓으면서 지자체들은 각종 현금 복지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서울 중구는 보건복지부의 반대에도 만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월 10만원 상당의 지역상품권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경기 군포시 등에서는 의학적으로 완전히 검증이 끝나지 않은 한의학 난임 시술에도 현금이 지급된다.

내년 4월 총선에서도 무분별한 지자체별 복지정책 확대가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교복비 지원은) 소외계층을 돕는 복지 본연의 목적과 다르고 경기 회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퍼주기”라며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포퓰리즘을 전파하고 있다”고 비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옆 지자체도 한다는데 우리도"…선거때 들불처럼 번진 '무상교복'

‘선거, 그리고 인접 지역과의 경쟁.’ 대표적인 무상복지 중 하나가 된 교복비 지원은 지방자치단체의 복지정책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잘 보여준다. 지자체 한 곳이 시행해 이목을 모으면 인접 지역을 중심으로 따라 하는 지자체들이 생긴다. 지자체장 선거 등 선심성 정책을 표와 맞바꿀 수 있는 계기가 주어지면 폭발적으로 확산된다. 문재인 정부는 지자체의 복지정책 결정에 더 많은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방침이어서 내년 4월 총선을 거치면서 비슷한 사례가 잇따를 전망이다.

정부 반대에도 강행하더니…

지자체의 신규 복지사업은 국무총리가 위원장인 사회보장위원회 틀 내에서 협의를 거치도록 법률로 규정돼 있다. 사회보장위에 따르면 ‘무상 교복’의 원조는 흔히 알려진 경기 성남이 아니라 전남 해남이다. 해남군은 성남시보다 3개월이 앞선 2015년 5월에 중·고등학생 전체의 교복비 지원을 위한 정책 협의를 요청했다. 이전에도 교복비를 지원하는 지자체들이 있었지만, 이는 취약계층이나 세 자녀 이상을 대상으로 한 선별복지였다.

성남 사례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성남시가 정부 결정에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는 “어려운 이들에게 지원하도록 하라”며 사회보장위에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사회보장위에서 협의되지 않으면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규정돼 있지만 성남시는 2016년 중학교 신입생 1인당 교복비 30만원 지원을 시작으로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이에 경기도와 복지부는 “성남시가 법적 절차를 따르지 않고 있다”며 대법원에 제소했다. 하지만 성남시는 오히려 2017년 무상교복 지급 대상을 고등학생까지 확대하며 공개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성남시와 복지부 간의 논란이 진행되는 사이 경기도 인접 지자체를 중심으로 교복비를 지원하겠다는 곳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7년 7월 용인, 10월 광명에 이어 11월에는 과천, 오산, 안성 등 5개 지자체가 교복비 지원을 결정했다. 다른 광역지자체에서는 강원 철원, 전남 화순 등 두 곳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인접 지자체 간 경쟁 효과가 확연하다.

무상교복, 전국 확산 성공

무상교복 정책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정부가 입장을 바꿔 성남시의 손을 들어주면서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 지난해 2월 이낙연 총리는 사회보장위에서 ‘취약계층에만 교복을 지원해야 한다’는 복지부의 입장을 물리도록 결정했다.

이를 기점으로 조금씩 확산되던 지자체의 무상교복 도입은 2018년 6월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불타올랐다. 사회보장위에 접수된 지자체의 무상교복 지원 협의 요청건수는 6월까지 14건이었지만, 7월 이후에는 47건에 이르렀다. 특히 지방선거 직후인 8월에만 10건, 9월엔 11건이 접수됐다. 당선된 지자체장과 교육감들이 앞다퉈 공약 이행에 나선 결과다. 광역지자체 중에는 그해 8월 무상교복을 도입한 전북, 10월 도입한 울산 등이 대표적이다. 충남교육청 관계자는 “교육감 선거 당시 공약했던 내용이었기에 지자체 지원 없이 교육청 예산으로 무상 교복 시행에 들어갔다”며 “다른 지자체보다 아이 키우기 좋은 지역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였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부분의 지자체가 무상교복 시행에 나서며 중·고등학교 교복 지원을 통한 복지정책 차별화는 힘들어졌다. 그러자 지자체들은 다시 교복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경쟁에 나서고 있다. 경기도는 최근 대안학교 등 비인가 학교에도 교복 지원을 하기로 했다. 경남 함안군은 어린이집 원아복도 세금으로 구매해준다는 계획이다.

문제는 교복비 지원이 늘면서 다른 교육 관련 투자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무상교복을 시행하고 있지 않은 광주교육청 관계자는 “한정된 재원 내에서 무상급식의 질을 끌어올리다 보니 교복비까지 지원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대구교육청 측은 “설문 조사에서 학부모 요구의 순위가 높은 교육 인프라 개선과 예술 교육 등에 우선적으로 투자하고 있다”며 “재원이 많이 소요되는 보편적 복지 항목이 늘면 다른 투자는 당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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