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인간과 동식물은 함께 살기 위해 서로를 길들였다

입력 2019-12-19 18:07   수정 2019-12-20 00:39


‘코끼리보다 작은 크기에, 황소 같은 겉모습과 색과 형태를 가지고 있다. 힘이 엄청나게 세고 속도가 매우 빠르며, 인간이든 야생동물이든 눈에 띄면 살려두지 않는다. (중략) 이 짐승은 매우 어릴 때조차 사람에게 길들여지지 않는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서사시 ‘갈리아 전기’ 제6권에서 남부 독일의 헤르니시아 숲에 살던 야생동물 우루스를 이렇게 묘사했다. 여기서 우루스란 현생 소의 야생 조상인 오록스다. 17세기에 멸종한 오록스는 몸무게가 최대 1500㎏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야생 소가 가축화한 것은 약 1만1000년 전 동아시아와 중동에서 시작된 신석기 혁명, 즉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어 먹을거리를 마련한 이후다. 유프라테스강의 신석기 유적 자데-엘 무그하라에서 발견된 뼈가 가축 소의 첫 고고학적 증거다.

특이한 것은 소가 인간과 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점점 작아졌다는 사실이다. 유럽에서 농업이 시작된 것은 7500년 전(기원전 5500년)쯤인데 3000년 뒤인 신석기 말에 소의 크기가 3분의 1가량 줄어들었다. 왜 그럴까.

생물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앨리스 로버츠 영국 버밍엄대 교수는 《세상을 바꾼 길들임의 역사》에서 목축의 초점이 고기 생산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더 많은 고기를 얻기 위해 채 성숙하기 전 혹은 성숙하자마자 도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동기 유적에서는 어린 소보다 성체의 뼈가 더 많이 발견된다. 우유를 계속 생산하기 위해 일찍 도축하지 않은 소가 많아진 결과다.

이렇게 보면 야생의 소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가축화하고 일방적으로 변화를 겪은 것 같다.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인간은 자연의 동식물을 길들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 의해 길들여졌다는 얘기다. 인간은 소를 키우고 우유를 얻으면서 생물학적으로 달라졌다. 원래 포유동물은 성체가 되면 젖당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락타아제 효소를 생산하지 못하는데 젖당 내성 유전자를 생산하도록 진화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이처럼 인간과 자연이 서로를 길들여온 역사를 대표적인 10가지 동식물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늑대를 길들인 개를 비롯해 밀, 소, 옥수수, 감자, 닭, 쌀, 말, 사과와 인간이다.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 야생의 씨앗과 동물들이 어떻게 인류의 빼놓을 수 없는 협력자가 됐는지를 저자는 고고학, 언어학, 역사학, 유전학, 지질학 등을 넘나들며 생생하게 풀어낸다.

400여 종에 달하는 현생 개는 모두 늑대의 후손이다. 더 정확하게는 유럽의 회색늑대와 오늘날의 개들은 유전자 서열의 99.5%를 공유한다. 개는 언제, 어디서부터 가축이 됐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지만 1만5000년 전쯤 늑대 무리가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인간의 곁으로 다가와 먹이를 얻어먹으면서 동맹을 형성했을 것으로 본다.

신석기 혁명과 함께 개는 육식성에서 잡식성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개들이 갖고 있는 아밀라아제 유전자의 사본 개수가 달라졌다. 아밀라아제 유전자는 녹말 소화효소를 지정하는데,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이 유전자가 많은 집단과 아주 적은 집단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시베리안 허스키, 그린란드 썰매개, 오스트레일리아 딩고 같은 품종은 늑대와 마찬가지로 아밀라아제 유전자를 두 개만 갖고 있는 반면 선사시대부터 인간이 농사를 지은 지역의 개들은 이 유전자를 많이 갖고 있다. 농업의 발상지인 중동에서 기원한 살루키는 무려 29개의 사본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야생 밀이 인류의 대표적 곡물이 된 데에는 신석기 농부들의 선택이 작용했다. 이삭이 달리는 가지가 잘 부러지고 씨앗이 바람에 잘 날아가는 야생 밀은 곡식을 얻기에 부적절했다. 이 때문에 신석기 농부들은 이삭 가지가 단단하고 낟알이 커서 바람에 날아가지 않는 것을 선호했다. 그 결과 야생 밀은 점점 인간에게 선택되기 좋은 형질로 변화했다.

쌀은 약 1만 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가장 오랜 벼농사 흔적이 발견된 곳은 양쯔강 주변이다. 대략 1만~1만2000년 전 양쯔강 하류에서 야생 벼를 채집했고 7000년쯤 전에는 재배한 벼가 야생 벼보다 많았다. 벼농사는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로 퍼졌고, 다양한 요리로 변신하고 있다. 밀과 쌀, 옥수수, 감자 등의 세계적인 확산은 인간의 식생활을 바꿔놓았고, 인간은 역으로 여기에 길들여졌다.

저자는 인간과 자연의 역사는 결국 서로 섞이고 교잡하며 길들여진 것이라고 역설한다. 특히 인류는 다른 종에게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친밀하고 덜 공격적인 성향과 외모로 스스로를 진화시키고 길들였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자각해야 할 것은 인간이 길들여온 야생이 우리와 동떨어진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길들여진 세계와 야생의 세계는 연결돼 있으며 길들여진 세계뿐만 아니라 야생의 세계를 원래 그대로 잘 가꾸는 것, 야생과 싸우는 대신 더불어 번성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이번 세기의 과제라고 강조한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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