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대 기준' 모호…유명무실한 동물보호법

입력 2020-01-10 17:14   수정 2020-01-11 00:23

서울 마포구 경의선 숲길에서 고양이 ‘자두’를 바닥에 내리치는 방법 등으로 목숨을 빼앗았다는 피고인에게 1심 법원은 지난해 11월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지난 8일 검찰은 주인을 잃어버린 반려견 ‘토순이’를 잔혹하게 죽인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을 구형했다. 동물보호법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일부에서 나오지만 실상은 재산보호에 방점이 찍혔다는 분석이 더 많다. 동물보호법은 처벌 조건으로 잔인성을 규정하고 있는데 잔인함의 개념이 모호해 형법상 재물손괴죄 등이 더해지지 않으면 유죄 판결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동물보호법 실형 비율 10% 미만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동물보호법 위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60개 사건(1심 기준)에서 35건은 벌금형이 선고됐고 5건(8.3%)에만 실형이 나왔다. 2018년 집계에서도 49건 중에서 벌금형이 31건으로 63%를 차지했고 실형은 2건이었다. 동물보호법에서는 동물을 학대하면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동물 학대를 막자는 사회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 동물보호법이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처벌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법 제8조는 목을 매다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지 못하게 하는데 어디까지가 잔인한 방법인지에 대한 규정이 없다. 전기가 흐르는 쇠꼬챙이로 개를 도살하는 방법에 대해 하급심은 “비인도적인 방법이 아니다”고 했는데 대법원에서 잔인한 방법이라며 결론이 뒤바뀐 사례가 나오는 배경이다.

잔인성과 함께 고의성도 인정돼야 한다. 처음부터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고 죽이려는 의도가 있다는 점을 검사가 입증해야 한다. ‘경의선 고양이 사건’의 재판부는 “피고인이 자두를 죽이는 결과까지 미리 계획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검사의 구형(1년6개월)보다 적은 형량을 선고했다.

“동물학대 유형 더 구체화해야”

동물보호법에 따른 처벌이 여의치 않다 보니 검찰은 재물손괴죄를 입증하는 데 중점을 둔다. 재물손괴죄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형이 부과된다. 동물학대 사건에서 동물의 주인이 있는지 없는지가 초미의 관심거리가 되는 이유다. 자두와 토순이 사건에서 구형이나 형량이 높았던 이유는 모두 동물의 주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됐기 때문이다.

동물보호법 자문을 많이 하는 김예림 법무법인 스마트로 변호사는 “동물보호법만으로는 주인 없는 동물을 학대했을 때 제대로 된 처벌을 내릴 수 없다”며 “동물의 특성과 학대에 해당하는 행위의 유형 등을 세부적으로 나누고 처벌 수위도 국제적 기준을 참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은 동물학대를 유형별로 나눠 형벌과 과태료 등을 구분해 선고한다. 예를 들어 전기도살은 동물이 의식을 잃고 심장정지가 일어나는 대발작과 그렇지 않은 경우까지 나눠서 판단한다. 2014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강아지를 트럭에 매달고 질주한 중년 남성에겐 법정 최고형인 징역 10년6개월이 선고되기도 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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