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나라 곳간을 지켜야 한다

입력 2020-01-19 17:17   수정 2020-01-20 00:11

국가 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700조원을 넘어섰다. 나랏빚 700조원 돌파는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9년 이후 처음이다. 1인당 채무도 1400만원을 웃돈다. 나라 곳간이 활짝 열렸다.

정부는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 적극적인 재정 운용으로 경제활력을 뒷받침하겠다는 입장이다. 상반기 재정집행률을 62%로 끌어올리고 시급한 일자리 사업은 1분기에 37%를 집행할 계획이다. 수출과 투자의 조기 회복이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친(親)투자·친기업 환경 조성이 더 시급하다. 주요 경제단체장은 “기업이 정치에 발목 잡혀 있다”고 하소연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한국 산업 생태계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보건·복지·고용 부문이 지출 예산의 35.4%를 차지한다. 180조원을 넘어섰다. 기초연금, 아동수당 같은 의무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현금성 복지 비중이 크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잘 설계된 공공 투자는 장단기적으로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효과가 크다. 그러나 투자 활성화, 연구개발 촉진, 신성장동력 창출을 위한 재원 배분은 미흡한 수준이다. 성장보다 분배에 치우친 예산 편성이다. 생산성 하락, 정책 불확실성 등으로 재정승수가 하락해 재정정책의 효과가 반감됐다. 복지지출의 재정승수는 0.5 미만이다.

지방정부의 현금복지 경쟁이 도를 넘어섰다. 아동수당, 청년수당에 더해 무상교복, 농민수당 등 점입가경이다. 급증하는 무상복지 탓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여력이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 자체 재원으로 인건비도 충당 못하는 곳이 많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은 현금성 복지의 대표적 사례다. 서울시는 12조원을 복지에 사용한다. 현금성 복지만 3조원을 넘는다. 선심성 복지의 일환으로 무상교복이 올해 12개 광역 지자체로 확대된다. 전라남도는 연 60만원의 농민수당을 지급한다. 예산 1459억원이 투입된다. 전라북도, 충청남도, 경기도도 비슷한 수당을 지급한다. 출산축하금 경쟁 역시 치열하다. 서울 용산구는 첫째 아이 출산 시 50만원을 지급한다. 강남구, 강동구 등도 금액을 올렸다.

일본은 인구 감소로 사실상 기능을 포기하는 지자체가 속출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인구 감소는 더 이상 생소한 용어가 아니다. 지방소멸 시대를 맞아 지자체는 선심성 복지 경쟁을 지양하고 고용 창출과 기업 유치를 위한 경쟁에 올인해야 한다. 자동차의 메카 미국 디트로이트시의 파산은 결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올해에도 공무원이 3만 명 이상 늘어난다. 공무원 인건비만 39조원이다. 공무원연금 적자가 작년 2조2000억원에서 2028년 5조1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공공기관 정규직 채용이 2만5000명을 넘어 역대 최대 규모다. 경제활동의 중추인 40대 일자리는 실종됐고 세금으로 만드는 50·60대 관제 일자리만 무성하다. 소등하기, 학교 급식 지원 같은 허접한 일자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이 오히려 늘어났다. 작년 8월 기준 비정규직이 약 86만 명 증가했다. 반면 339개 공공기관은 정규직이 17.6% 늘어났다. 공공기관을 ‘철밥통’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재정지출 증가율이 2017년 이후 경상성장률의 두 배를 웃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위기 상황에서나 경험한 예외적 현상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정부부채 비율 증가 속도와 평균 잠재부채가 세계 최상위권이다. 저출산·고령화 파고가 재정 운용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나라 곳간을 지키기 위한 재정 파수꾼의 결기가 필요하다. 재정 포퓰리즘을 막지 못하면 한국호가 좌초할 수 있다.

복지의 궤도 이탈은 재정과 성장잠재력을 크게 잠식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지원 확대는 감동적 결단이지만 무임승차의 부작용을 경계해야 한다. 재정규율의 근간이 훼손되면 곤란하다. ‘빌린 차를 세차(洗車)하는 사람은 없다’는 서양 격언이 있다. ‘재정 책임성’ 확보는 결코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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