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기울어진 운동장' 이해부터 잘못 됐다

입력 2020-01-27 16:59   수정 2020-01-28 00:14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나 팀이 승리하기 위해 균등한 기회를 가지려면 운동장이 평평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으면 한쪽 선수나 특정 팀이 유리해진다. 모든 경기는 참가자들이 승리할 동일한 기회를 갖도록 모든 참가자에게 같은 규칙을 적용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정성과 관련해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용어가 자주 쓰인다. 구조적 또는 제도적으로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에 유리하게 돼 있으면 그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으로서 불공정하다.

그런데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용어가 잘못 사용되는 사례가 많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쟁에서 특히 그렇다. 압도적인 자본 차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경쟁이 제한되므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쟁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불공정을 해소하기 위해 대기업을 억제하고 중소기업에 유리한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치 축구경기에서 벨기에(국제축구연맹 랭킹 1위)와 베트남(94위) 간의 경기를 불공정한, 즉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라면 모든 경기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테니스 경기에서 스페인의 라파엘 나달(세계랭킹 1위)과 실력 차가 크게 나는 한국의 정현 선수(127위) 간 경쟁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이런 것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며 베트남에, 정현 선수에게 유리한 규칙이나 제도를 만들어주면 그게 오히려 기울어진 운동장으로서 불공정한 것 아니겠는가.

기회가 열려 있는 것과 성공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누구나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 테니스 선수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경기에 출전하는 사람은 소수고, 거기서 우승하거나 챔피언이 되는 사람 또는 팀은 하나다.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과 출전해 성공하는 것은 다르다. 정부의 인위적인 진입장벽이 없는 자유시장에서 기회는 모든 기업, 즉 중소기업에도, 대기업에도 열려 있다. 그 분야에 진입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각자의 선택이다.

제도적으로 특정인이나 특정 그룹, 특정 인종 등이 출전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기울어진 운동장이지, 그렇지 않고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다면 그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잘못 적용한 대표적 사례가 대형마트 규제다. 전통시장을 살린다는 취지로 대형마트 의무휴일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 규제는 전통시장을 살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 대형마트가 위축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으려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버린 꼴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추진했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적용한 정책들이다. 그 결과 정부가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처지가 더욱 악화됐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형편의 차이에 따라 출발선이 다르다고 한다. 이 때문에 애초에 기회의 평등 측면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발선의 차이와 기회의 평등이야말로 다른 개념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기회의 평등은 누구에게나 기회가 열려 있느냐의 문제지, 사람들 간 형편의 차이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으로 신분, 성, 인종 차별 등은 문제다. 그러나 그런 제도적 장벽이 없다면 개인의 특성으로 인한 형편의 차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 자연스러운 상태에서 기회가 열려 있으면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미래에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다. 만약 개인의 특성에 따른 형편의 차이를 두고 그것조차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하며 ‘기회의 평등’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말 그런 식의 기회의 평등을 원한다면 가장 공정한 것은 제비뽑기일 것이다. 매 순간 모든 사안에 대해 제비뽑기한다고 상상해보자. 과연 그런 사회가 가당키나 한가.

정치인과 사회운동가들이 사용하는 기울어진 운동장만큼 사람들을 현혹하는 용어가 없는 것 같다. 그로 인해 많은 잘못된 정책과 제도가 생겨나 국민에게 피해를 입히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개념을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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