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미·북 비핵화 협상 2년…불편한 진실 마주할 때

입력 2020-02-05 18:24   수정 2020-02-06 00:17

지난해 이른바 ‘연말 협상 시한’을 제시하며 크리스마스 전후 무력 도발 가능성을 암시했던 북한의 겁박은 일단 대미(對美) 압박용 레토릭(수사)으로 끝났다. 끊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미국과의 마지막 협상줄을 싹둑 잘라버리기 부담됐을 게 분명하다. 2년간 이어진 미·북 비핵화 협상은 현재 장기간 휴지기, 아니 양측의 의도적인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다. 작년 10월 초 스톡홀름 협상이 결렬된 뒤 미국과 북한은 이혼 판결을 앞둔 부부처럼 싸늘한 냉기만 내뿜고 있다.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시작된 미·북 주연, 한국 조연의 한반도 비핵화 드라마는 이렇게 지켜보기 불편한 결말로 치닫고 있다. 벼랑 끝에서 “시간 얼마 없어”라고 외치는 북한에, 미국은 저들의 본심을 간파한 듯 “떨어질 테면 떨어져봐” 식으로 무심하게 대꾸한다. 무대 뒤 숨은 조연을 자처하며 미국과 북한을 협상장에 이끌었던 우리 정부만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의 비핵화 협상은 결과적으로 전후좌우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 밀고 당기기의 연속이었다. 미국과 북한은 서로를 향해 뒷짐진 손에 각각 ‘선(先) 비핵화’ ‘선 제재완화’ 카드를 쥐고 상대에게 먼저 실행 버튼을 누르라고 날선 신경전을 벌였다. 비핵화 약속을 지렛대 삼아 제재완화 등 경제 지원을 얻으려는 시도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소위 백두혈통 김씨 가문의 낡은 책략일 뿐이다. 북한은 1993년 1차 북핵위기와 2002년 2차 북핵위기 때부터 검증하기 힘든 비핵화 약속을 미끼로 던져 교묘하게 돌파구를 찾았고 핵을 개발하는 시간을 벌었다.

잠시 비핵화 시나리오를 읊었던 전문가들조차 이젠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강한 의문을 제기한다. 북한이 체제 보장을 담보하는 안전벨트인 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뒤따른다. 김정은은 올해 신년사로 대체한 노동당 전원회의 보고 연설에서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추구한다면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공언했다. 김계관 외무성 고문은 지난달 11일 담화에서 “대북제재 완화와 핵을 바꾸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북한이 그동안 저 밑 깊숙이 숨겨왔던 ‘핵 보유국 지위 인정’이란 본심을 드러냈다는 평가다.

2년의 시간을 허비했다고 자책만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가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가속화하는 확실한 목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북한 우방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을 견제하며 유엔 안보리에 대북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한 것 자체가 제재 효과를 증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걱정스러운 건 정부의 여전한 낙관론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여전히 대화의 문을 닫지 않고 있다”며 “북·미 대화의 성공 가능성에 더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남북한 관계가 미·북 관계를 앞질러 갈 수 있다며 대북제재 위반의 모호한 경계선상에 있는 우리 국민의 대북 개별관광 추진을 공식화했다. 이에 대한 북한의 호응은 아직 없지만 아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사태가 마무리될 때쯤 마지못한 척 우리 정부가 내민 손을 잡을 것이다. 2017년 12월 대북제재의 완성판이라고 불렸던 제10차 대북제재 결의안이 유엔 안보리를 통과한 직후 평창동계올림픽에 숟가락을 얹었던 그때처럼 말이다. 북한의 비핵화 기만극도 도돌이표를 그리듯 그렇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될 것이 자명하다.

dolp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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