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봉쇄 도시'의 숨은 의인들

입력 2020-02-06 18:21   수정 2020-02-07 11:20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전염병으로 봉쇄된 도시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주인공인 젊은 의사 베르나르 리외, 나이 많은 의사 카스텔, 헌신적인 공무원 조제프 그랑, 파리에서 취재하러 들렀다가 탈출을 포기하고 리외를 돕는 신문기자 레이몽 랑베르….

소설 배경인 20세기 중반 알제리의 도청 소재지 오랑은 현재 중국 후베이성 중심도시 우한의 모습과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 모든 교통망이 차단된 도시, 인적이 끊긴 거리, 밀폐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을 옥죄는 불안과 공포, 목숨 걸고 전염병과 맞서는 의인(義人)들의 사투까지 닮았다.

카뮈 소설 속 의사·시민·공무원…

우한에서 병마와 싸우는 최전선의 주인공은 의사와 간호사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치료 전문병원으로 지정된 진인탄병원의 장딩위 원장은 근육 수축증인 루게릭병을 앓아 걸음이 불편한데도 밤낮없이 치료에 매달리고 있다. 다른 병원에서 일하는 부인까지 감염됐다. 그는 “아내를 잃을까 두렵다”며 눈물을 흘리다가 또다시 병동으로 향했다.

우한시중심병원 의사 리원량은 가장 먼저 감염병 징후를 포착하고 격리 조치를 시도했다가 유언비어 유포자로 몰렸다. 그는 공안(경찰)의 조사를 받으면서 치료를 계속하다 결국 감염됐고, 불행히도 오늘 새벽 숨졌다.

이들을 비롯해 헤이룽장성에서 43년간 의사로 근무하다 은퇴한 86세 장징다오 등 전국의 의료인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간호사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산시아는 “보호장구 착용에 걸리는 시간을 줄여 더 많은 생명을 구하겠다”며 삭발을 단행했다. 베이징 항공의원 소속 의사와 간호사들도 춘제(중국 설) 직전 연휴를 반납하고 구급대를 편성해 우한으로 달려갔다.

우한시가 응급환자 1000여 명을 수용할 병원 건설에 나서자 건설회사는 78시간 만에 설계도를 완성했다. 이 회사는 열흘 안에 공사를 완료하기 위해 근로자들에게 평소 임금의 세 배를 지급했다. 자원봉사에 나선 택시기사들은 방호복을 입은 채 의료진과 의약품을 실어 날랐다. 주민들은 방역팀을 꾸려 소독에 나서고, 진료 예약을 잡아줬다. 마스크 500장을 파출소에 갖다주고 몰래 사라진 청년도 있다.

교민 보내고 남은 직원들 분투

유령도시에 갇힌 시민들은 서로 용기를 북돋고 있다. 며칠 전 밤에는 아파트에 격리된 한 시민이 창문을 열고 외쳤다. “짜요(加油: 힘내자)!” 그러자 여기저기 주민들이 따라 외쳤다. 격리 생활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 “밤 8시 창문을 열고 노래를 부르자”고 소셜미디어에 제안한 뒤 격려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이런 ‘숨은 의인’들의 노력으로 어제까지 완치해 퇴원한 사람이 1000명을 넘었다. 28일간의 싸움 끝에 병마를 이기고 퇴원한 한 여성은 “용감한 의사와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치료 덕분”이라며 고개를 숙였다.

우리 교민과 유학생 701명을 두 차례 전세기로 무사히 귀국시킨 뒤 현지에 남은 사람들을 돕고 있는 우한 주재 영사관 직원들과 한인회의 노력도 눈물겹다. 교민 철수 실무를 책임진 정다운 영사는 “마지막 전세기에 333명이 무사히 탑승한 뒤 이륙 전문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펑펑 울었다”며 남은 교민에게 “마스크 등 구호물자를 나눠드려야 하는데 조금만 버텨달라”고 말했다.

우한은 카뮈 소설 속의 인구 20만 명보다 50배나 많은 1100만 명의 대도시다. 오랑이 봉쇄 10개월 만에 자유를 찾은 날 기차 기적이 울렸듯이 우한에서도 하루빨리 봉쇄가 풀리고 재기의 기적 소리가 울려 퍼지길 기원한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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