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랜드 미스터리…'국제 전문조직'은 왜 푼돈 털었나 [조재길의 경제산책]

입력 2020-02-12 11:16   수정 2020-02-12 11:30


강원랜드가 발칵 뒤집힌 건 지난 7일 저녁이었습니다. 30~40대 나이의 외국인으로만 구성된 3인조가 카지노 슬롯머신의 현금 상자를 통째로 뜯어 달아난 게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범행하는 데 걸린 시간은 5분이 채 걸리지 않았고, 범행 후 약 5~6시간 만에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빠져 나갔습니다.

사건을 맡은 강원 정선경찰서는 범행 수법이 무척 치밀했다는 점, 식별이 어려운 위조 여권을 동원했다는 점 등을 들어 국제범죄 전문조직이 개입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인터폴에 적색 수배 요청을 했습니다. 경찰 측은 “범인들이 입국부터 출국까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다. 세계 곳곳의 카지노를 노리는 전문털이범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했지요.

몇 가지 의문점이 남습니다. 전문조직 소행이라고 하기엔 강원랜드의 피해 금액이 너무 적었고 현금털이범들의 인적 사항도 금방 드러났기 때문이죠. 오히려 강원랜드 측의 안이했던 보안 실태가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옵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1. 3인조가 훔친 돈은 2000여만원 뿐?

강원랜드와 경찰 측은 “외국인 현금털이범 3인조가 훔친 돈은 총 2400만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난 6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한 범인들은 7일 서울에서 렌터카를 빌려 정선을 찾았고, 이날 오후 4시께 순차적으로 카지노에 입장했지요. 손님이 별로 없는 슬롯머신 앞에 앉아 200만원의 현금을 투입한 뒤 한 두 번 게임 버튼을 누르고 곧바로 반환 버튼을 눌렀습니다.

반환 버튼을 누르면 머신에 남아있는 잔금을 돌려주는 ‘이지티켓’이 자동으로 인쇄돼 나옵니다. 이 티켓을 들고 환전 카운터에서 현금으로 교환한 뒤 다시 같은 슬롯머신으로 가 200만원을 재입금했지요. 이런 식으로 약 두 시간동안 총 12회에 걸쳐 슬롯머신 안에 차곡차곡 현금을 쌓았습니다. 총 2400만원이 이 슬롯머신의 현금 상자(일명 빌스테커)에 들어간 겁니다. 강원랜드엔 총 1360대의 슬롯머신이 있어, 하나의 슬롯머신을 이들이 계속 점유할 수 있었지요.

범인들은 이후 강원랜드 보안 직원을 호출해 “해당 슬롯머신에 이상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 직원이 만능키를 사용해 슬롯머신의 현금 상자를 연 뒤 이상이 없음을 보여주고 자리를 뜨자, 이들은 직원이 사용했던 방식으로 기계를 열고 현금 상자를 탈취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3인조가 훔친 돈이 2000여만원 남짓이란 점입니다. 홍콩 국적의 30대 남성과 페루 국적의 30~40대 남녀로 확인된 이들은 인천행 비행기를 타고 들어와 국내에서 3일 간 숙식했으며, 렌터카를 빌리고, 정선에서 인천까지는 택시를 이용했습니다. 위조 여권까지 사용한 치밀한 작전, 3명의 비행기 왕복 티켓 및 숙식비 등 각종 경비, 인터폴 적색 수배를 받는 처지가 된 점 등을 감안할 때 사실상 별로 남지 않는 일을 벌인 셈입니다. 국제 전문조직의 소행이라고 보기엔 어설픈 점이 적지 않지요.

정선경찰서 관계자는 “지역 내 가장 큰 사건이 터졌기 때문에 정선경찰서의 모든 형사들이 매달려 있다고 보면 된다”며 “폐쇄회로(CC)TV까지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피해 금액은 슬롯머신 하나에만 국한돼 있다”고 확인했습니다.

다만 강원랜드 측 피해 금액(2400만원)엔 이들이 들고 온 현금 200만원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실제로 범인들이 털어간 돈은 2200만원 정도일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피해 금액에 대해 강원랜드에 다시 확인을 요청한 상태”라고 했습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2. 인천공항 출국 전 왜 못 잡았나

3인조는 한국에 입국하기 전 이미 8일 오전 0시20분 방콕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7일 오후 6시55분 범행한 직후 최대한 빨리 인천공항에 도착해야 했지요. 일명 ‘총알 택시’를 탔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강원랜드 측이 슬롯머신의 현금 상자가 통째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눈치 챈 것은 범행 후 한시간 반 이상 지난 8시30분이었습니다. 자체 조사를 벌인 뒤 오후 9시15분 경찰에 신고했다고 합니다.

정선경찰서는 CCTV와 입장권 발권 현장의 영상을 통해 금방 용의자들을 특정했습니다. 이후 형사대를 인천공항에 급파했으나, 공항에 갔을 때는 이튿날 0시40분이었지요. 3인조 범인들이 20분 전 한국을 벗어난 뒤였습니다.

카지노 현장에서 용의자들을 특정한 뒤 얼굴 영상까지 확보한 정선경찰서 측이, 서둘러 인천공항경찰단과 공조했더라면 용의자들의 출국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용의자들 사진을 인천공항 경찰에 전송해 출국 심사대에서 바로 잡으면 됐을텐데 왜 못했느냐”는 질문에 대해 정선경찰서 관계자는 “현행법 및 관련 규정상 불가능한 부분이 있다”고 답변했습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3. 만능키만 있으면 슬롯머신 모두 딴다?

경찰은 범인들이 소위 ‘만능키’를 이용해 슬롯머신의 현금통을 뜯어낼 수 있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해당 만능키가 기계에 맞는 지 알아보기 위해, 게임 도중 강원랜드 보안 직원을 불러 슬롯머신 체크를 요청했다는 것이죠.

다만 만능키가 무엇인지, 이것만 있으면 모든 슬롯머신을 딸 수 있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미스터리입니다. 정선경찰서 관계자는 “추가 범행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밝히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했습니다.

약 4년 전 유럽에는 콜롬비아 페루 등 남미 폭력조직이 유입돼 소위 만능키로 슬롯머신 현금을 잇따라 빼가는 사건이 수 차례 발생한 적이 있습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4. 강원랜드의 허술한 보안, 문제없나

강원랜드는 국내 유일의 내국인 전용 카지노입니다. 외국인도 입장 가능하지만, 서울에서 멀기 때문에 외국인이 많이 찾지 않지요. 외국인 카지노는 서울 인근에도 적지 않습니다.

외국인 3인조가 위조 여권을 사용해 객장에 입장할 때부터, 강원랜드가 이들을 주시할 이유가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범행이 일어났던 시점, 강원랜드엔 상당수 보안 인력이 정상 근무를 하고 있었지요.

외국인 3인조가 12번에 걸쳐 이지티켓을 출력하고 같은 금액을 바꿔가는 걸 반복했지만 이를 주시한 직원 역시 없었습니다. 슬롯머신 자체엔 이상 현상이 감지됐을 때 비상 경고음이 울리도록 돼 있지만 당시 접촉 불량 탓에 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원랜드 내 촘촘하게 설치된 감시 카메라도 소용이 없었지요. 국내 최대 카지노인 강원랜드의 허술한 보안 의식을 차제에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강원랜드의 작년 매출은 1조5201억원, 영업이익은 5022억원에 달했습니다. 이에 비해 피해 금액 2000여만원이 크지 않은 건 사실이지요. 하지만 경찰이 범인들을 끝까지 추적해 잡아내야 ‘진짜 국제 범죄조직’이 더 큰 범행을 도모하는 걸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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