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지업계 ‘빅4’ 중 한 곳인 한국제지가 백판지 제조업체 세하를 인수한다. 지난해 골판지 제조업체 원창포장공업을 인수한데 이어 백판지 업계 과점업체 세하까지 인수에 성공하면서 사업 다각화에 급물살을 타고 있다.
26일 투자은행(IB)업계와 에 따르면 세하 매각에 나선 연합자산관리(유암코)는 이날 세하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제지를 선정했다. 매각 대상은 유암코가 보유한 세하 지분 71.6%와 503억원의 매출 채권이다. 매각 측은 상세 실사를 거쳐 내달 중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세하는 1984년 설립돼 1996년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했다. 제과, 제약, 화장품 등의 포장재로 쓰이는 범용 백판지(SC마니라지, 아이보리지 등)를 주력으로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1772억원의 매출을 거둬 총 1조3000억원에 달하는 국내 백판지 시장에서 약 13%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세하를 비롯해 한솔제지, 깨끗한나라, 신풍제지, 한창제지 등 5대 백판지 업체들은 국내 시장의 95%를 장악하고 있다.
안정적인 수익을 창출하던 세하는 2005년 카자흐스탄 광구 유전 개발 등 에너지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다 유동성 위기가 불거졌다. 결국 2013년 말 워크아웃을 신청해 이듬해 유암코에 인수됐다. 2015년까지 적자를 이어가던 세하는 유암코의 구조조정 효과가 본격화된 2016년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2018년에도 1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고, 지난해 3분기까지 약 95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현금창출력을 보여주는 상각전영업이익(EBITDA)은 약 150억~200억원대다.
한국제지는 해성산업 계양전기 등을 보유한 해성그룹 계열사로, 인쇄용지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복사지 브랜드 ‘밀크(MILK)’로 잘 알려져 있다. 2011년 출시된 밀크는 1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 45%를 달성하며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모바일 기술 발전으로 인쇄용지 수요가 꾸준히 감소하는 가운데 2016년 말부터 원재료인 펄프 가격마저 고공행진을 하면서 한국제지 실적은 악화됐다. 올 상반기 매출 2855억원을 거뒀지만 39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경영난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 안재호 전 삼성SDI 부사장을 대표로 영입하는 등 조직 개편을 했다.
한국제지가 세하를 인수하는 것은 사업 다각화를 통해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포장지로 쓰이는 백판지 산업은 전자상거래 확대와 함께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중국이 고지 수입을 중단하면서, 백판지의 원료인 국내 고지 가격이 낮게 유지되고 있는 점도 세하 인수의 매력으로 작용했다. 지난해 골판지에 이어 백판지로까지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면서 수익성 뿐 아니라 사업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도 누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백판지 시장 내 과점업체 중 하나인 신풍제지가 공장 이전 문제로 평택 백판지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업계 내 공백이 생긴 지금을 백판지 시장 진입의 적기로 판단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암코의 구조조정을 거치며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하고 있는 세하 인수를 시작으로 백판지 시장 내 점유율을 높여 한솔제지와 깨끗한나라로 굳혀진 백판지 시장의 판도를 흔들 수 있다는 판단이다.
한국제지는 이번 인수를 통해 제지업계 선두를 넘보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해 한국제지의 매출액은 7159억원 수준이다. 여기에 매출액 1200억원대인 원창포장공업과 1800억원 수준인 세하를 합치고 전자상거래 시장의 성장성을 더하면 제지 업계 2위인 무림페이퍼(지난해 매출 1조 1240억원)를 바짝 추격할 수 있게 된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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