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입력 2020-02-27 11:10   수정 2020-02-27 11:13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

시인은 2005년 짧은 러시아 여정에서 만난 바이칼호수의 붉은 양귀비 꽃잎을 책갈피 속에 간직했다. 6년 후 재직 중이던 회사에서 추진한 천연자원 개발 프로젝트는 러시아로 가는 새로운 다리가 됐다. 4년을 머물며 동경하던 그곳에서의 소회를 산문집 <시베리아를 건너는 밤>에 담았다.

1993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저자는 <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첫눈은 혁명처럼> 등의 시집을 낸 시인이다.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한 후 막연하게 광활한 대지를 향한 꿈을 꿔왔다. 하지만 그렇게 그리던 러시아 생활을 시작했을 때 막상 마주한 것은 러시아의 백야와 겨울의 혹독한 어둠과 추위, 그리고 눈이었다. 우랄산맥, 바이칼호 등 이질적인 자연은 날이 선 시인의 감수성을 자극했다.





기행문 성격을 띠고 있는 책이지만 러시아의 문화 예술, 문명의 감수성에 대한 섬세한 통찰이 돋보인다. 책은 시인의 시선으로 혁명가 레닌과 크룹스카야, 이네사의 행적과 제정 러시아 시대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오갔던 수많은 예술가들의 자취를 따라간다. 혹독한 러시아의 겨울 밤엔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생가에 갔던 기억을 되새기며 <닥터 지바고>의 인물들과 그에 얽힌 러시아의 역사를 돌아본다. 그는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에 대해 "전쟁과 혁명이 있었기에 그들의 사랑은 빛났고 이별은 참혹했다"며 "고난은 사랑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었고 비극적인 사랑은 불멸의 사랑을 완성했다"고 서술한다.

한편에선 톨스토이의 작품들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이 흐른다. 저자는 사랑을 위해 정적과 결투를 벌이다 부상을 당해 죽은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시킨의 삶과 자살을 통해 사랑의 진정성을 증명한 혁명시인 마야코프스키의 생에 대해서도 사색한다.

저자가 직접 찍은 러시아 구석구석의 풍경과 그곳을 마주한 후 지은 시들을 곳곳에 배치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러시아를 향한 환상과 호기심에 시인은 답한다. "러시아는 장편의 나라다. 긴 겨울과 대륙의 빈 공간을 시로 채우기에는 애당초 불가능하다. 러시아의 많은 시인이 절명한 이유는 광활한 시간과 공간을 시로 다 채울 수 없어 좌절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러시아에서 이긴다는 의미는 견딘다는 것이며, 살아남는다는 것이다."(송종찬 지음, 삼인, 308쪽, 1만5300원)


관련뉴스

    top
    • 마이핀
    • 와우캐시
    • 고객센터
    • 페이스 북
    • 유튜브
    • 카카오페이지

    마이핀

    와우캐시

    와우넷에서 실제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되는 사이버머니
    캐시충전
    서비스 상품
    월정액 서비스
    GOLD 한국경제 TV 실시간 방송
    GOLD PLUS 골드서비스 + VOD 주식강좌
    파트너 방송 파트너방송 + 녹화방송 + 회원전용게시판
    +SMS증권정보 + 골드플러스 서비스

    고객센터

    강연회·행사 더보기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이벤트

    7일간 등록된 일정이 없습니다.

    공지사항 더보기

    open
    핀(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