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국민연금의 단계적 주주활동 절차를 엉망으로 만든 금융위원회

입력 2020-03-12 10:53   수정 2020-03-12 11:13

≪이 기사는 03월09일(05:4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증시를 안정시켜야 할 금융위원회가 오히려 시장 교란자가 돼 혼란을 키우고 있는 상황입니다.”(한 기관투자가 고위관계자)

금융위원회가 상장 주식 5% 이상을 보유한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의 보고 및 공시 의무를 완화하기 위해 2월초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개정한 것을 놓고 시장에서 거센 비판이 일고 있다. 시행령이 너무 졸속으로 개정되다보니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주주활동 프로세스가 무력화되거나 ‘제멋대로’ 보유목적 변경 공시를 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기관투자가는 물론 이들의 주주활동 대상인 기업들이 큰 피해를 받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대표적으로 금융위의 시행령 개정은 기업들과 몇 년 간 비공개 대화 과정을 거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려던 국민연금 주주활동 절차의 근간을 무너뜨렸다.

9일 금융투자(IB)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작년말 보건복지부가 제정한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수탁자 책임 활동(주주활동)에 관한 지침’을 만들어 올해부터 본격 시행하기 시작했다. 이 지침에 따라 국민연금은 배당 부실, 과도한 임원보수한도, 횡령 등 법령위반 등을 ‘중점관리사안’으로 정하고 이 사안에 해당하는 기업들을 대상으로 주주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국민연금은 지침에서 점진적인 방식으로 주주활동을 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중점관리사안 대상 기업에 대해 2년까지는 비공개대화를 하고 개선이 안되는 기업만 3년차부터 공개한 뒤 4년차부터는 주주제안 등을 통해 경영참여까지 시도하는 방식이다. 국민연금이 국내 증시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만큼, 주주활동을 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기업들의 평판 하락, 주가 급락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금융위가 지난 2월1일부터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국민연금은 이 지침을 그대로 시행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개정 시행령이 국민연금 등 기관들이 5% 이상 지분 보유 기업에 대해 배당 확대, 지배구조 개선 관련 정관 변경, 이사해임 요구 등 주주활동을 하려면 보유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바꾸도록 강제했기 때문이다.

복수의 기관 관계자들은 “금융위는 기관들이 주주활동과 관련해 공식적인 절차에 착수하지 않았더라도 주주활동에 나설 의향만 있어도 즉시 보유 목적을 변경하라고 구두로 권고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국민연금은 지난달 7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현대차, LG화학 등 56개 기업의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일반투자’로 변경하는 공시를 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국민연금이 현재 비공개대화를 하고 있거나 향후 주주활동을 계획 중인 기업들이었다. 주주활동 지침에 따라 원래는 비공개됐어야 할 기업들이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 때문에 무더기로 공개되면서 '문제 기업'으로 낙인이 찍히게 되는 황당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국민연금은 이런 문제를 사전에 인지하고 대책을 강구했지만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재로선 뚜렷한 대책은 없는 상황”이라며 “상위 법령의 정비나 해석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연기금 전문가는 “현재 상황에선 국민연금은 어떤 형태로든 주주활동을 계획만해도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라 공시를 해야 한다”이라며 “한마디로 비공개에서 공개로 단계적으로 추진되는 국민연금 주주활동의 기본 틀이 붕괴된 셈”이라고 지적했다.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선 “금융위가 졸속으로 시행령을 개정한 탓에 발생한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 기관의 임원은 “국민연금 주주활동 지침은 한 정부부처(보건복지부)가 제정한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만들어진 것인데 이게 또다른 정부부처(금융위)의 시행령 개정으로 유명무실화된 코미디 같은 상황이 일어났다”며 “이게 제대로 된 정부의 업무처리냐”고 반문했다.

기관들 사이에선 “금융위가 5%룰과 관련해 시행령만 덜렁 바꿔놓고 하위 시행규칙과 규정 등을 통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 놓지 않은 것도 큰 문제”라는 비판도 많다.

한 자산운용사 사장은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보니 기관들은 제각기 다른 각자의 기준에 따라 보유목적 변경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어떤 기관은 배당확대 요구만 해도 일반투자로 보유목적을 바꾸지만 다른 기관은 국내 생산설비의 해외 이전 요구를 하는 등 경영 전략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면서도 보유목적을 단순투자로 유지한다”며 “한마디로 뒤죽박죽인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고위 관계자는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이번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잘못 고쳐 시장의 혼란을 초래한 금융소비자국 담당 공무원들을 중과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문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정환/이상열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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