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근의 데스크 시각] 혼탁 재건축 수주전 막는 코로나19

입력 2020-03-15 18:38   수정 2020-03-16 00:19

여러 해 부동산시장을 취재했지만 도대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하나 있다. 법의 심판이 계속돼도 불법 재건축·재개발 수주전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와 서울시, 검찰이 제도를 정비하고 돈을 주고받은 조합장과 건설사 직원, 철거업체를 잡아들여도 불법은 계속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건설사들은 조합원 표를 돈을 주고 사들였다. 시공사 간 경합이 치열했던 곳에선 막판에 매표 행위가 흔했다. 한때는 조합원당 매표 금액이 최대 2000만원까지 올라갔다. 이 일에 직접 관여했던 건설사 직원들의 솔직한 고백이 그렇다. 갈비세트 등 선물을 돌리거나 단체 관광을 보내주는 건 애교 수준이었다.

진화하는 空約

정부, 지방자치단체, 검찰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최근 몇 년 새 건설사 행태는 더욱 교묘해지고 있다. 입찰 제안서의 눈속임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파트 고급화 경쟁이 펼쳐지면서 최근 들어선 수백, 수천억원대 무상 특화공사비를 제시하는 사례마저 나왔다. 이는 디자인 커뮤니티 시설 조경 등을 개선하는 데 들어가는 돈이다. 서울 강남권의 한 수주전에 참여한 건설사는 5000억원이 넘는 특화공사비를 무상 부담하겠다고 나섰다. 서울시가 조사해보니 총 공사비에 포함된 돈이었다. 공짜가 아니라 모두 조합원이 부담하는 돈이었다.

법에서 허용하지 않는 황당한 특화설계안(대안설계)을 제시하는 것도 일상화됐다. 아파트 동(棟) 수를 절반으로 줄이는 대신 층수를 높여 쾌적한 단지를 조성하겠다거나 모든 가구에서 한강 조망이 가능하도록 설계를 바꾸겠다는 식이다. 인허가 당국이 허용할 리 없는 안이다. 그럼에도 건설사는 공약(空約)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법망을 피해갈 수 있게 사전 장치를 교묘하게 해놓기 때문이다. 입찰제안서에 ‘인허가 당국이 허용하면’이란 전제조건을 달아놓는 게 대표적인 방법이다. 물론 조합원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특화설계안을 내세워 홍보한다. 전 조합원을 상대로 대놓고 현금을 뿌리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지만 조합 운영진과 대의원을 매수하는 사례는 여전하다는 게 건설사 직원들의 솔직한 고백이다. 조합 집행부를 휘어잡는 건설사가 수주에 결정적으로 유리해지는 이유다.

OS 요원 없애는 계기로 삼아야

올 들어 서울 수주전에서 금품·향응 제공, 눈속임 입찰제안서 등은 많이 줄었다. 서울시가 한남3구역 혼탁 수주전에 철퇴를 내린 덕이다. 하지만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점이 하나 있다. 대규모 OS(outsourcing) 요원 동원이다. 이들은 건설사 직원을 대신해 조합원을 접촉하는 일을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는 와중에도 서울 반포에서 일부 건설사가 OS 요원을 풀어 조합원을 직간접적으로 접촉하고 있다. 현행법상 OS 요원을 앞세워 조합원을 개별 접촉하는 것은 불법이다. 정해진 기간 내에 정해진 장소에서만 조합원과 만나도록 돼 있다. 그러나 OS 요원들은 조합원에게 일일이 전화하거나 집 앞에 마스크를 가져다 두고 있다. 조합원을 데리고 주택 전시관 투어를 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OS 요원은 도대체 어디서 조합원 개인정보를 불법 취득해 이런 일을 벌이는 걸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로나19 사태로 OS 요원이 조합원을 직접 접촉하는 게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뜻밖에 ‘클린 수주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는 OS 요원을 뿌리 뽑을 절호의 기회다. 혼탁 수주전에 대한 펜의 감시를 강화해야 할 때다.

tru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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