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완의 데스크 시각] '의료강국' 한국에 있는 '숨은 질환'

입력 2020-03-18 18:06   수정 2020-03-19 00:28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수십 명대로 떨어졌다. 새로 생겨나는 환자보다 퇴원하는 완치자가 더 많아졌다. 안심할 단계는 아니라지만 하루 수백 명의 확진자가 쏟아질 때와 비교하면 진정 국면에 들어선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이미 외국에서는 한국을 성공 사례로 치켜세우고 있다. 신속한 환자 격리, 뛰어난 의료 체계, 시민들의 자발적 사회적 거리두기 등이 잘 어우러져 코로나19 확산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코로나19 감염자의 사망률도 훨씬 낮다. 1%가 채 안 된다. 중국의 4%, 이탈리아의 8% 등에 비할 바가 아니다.

기저질환 통계에 의문

여기에도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한국의 뛰어난 의료 체계를 첫손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한국처럼 많은 사람이 저렴한 비용으로 빠른 진단과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도 ‘의료 강국’ 한국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도 호흡기 질병 환자에 취약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호흡기 질병인 코로나19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있다는 평가를 무색하게 하는 대목이다.

코로나19 관련 사망자는 대부분 기저질환이 있었던 환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 2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를 봐도 기저질환이 없는 코로나19 환자 사망률은 0.9%에 불과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달 16일까지 발생한 국내 코로나19 사망자 75명 중 74명이 기저질환자였다. 1명은 미확인이다. 심장질환 등 순환기계 질환 62.7%, 당뇨병 등 내분비계 질환 46.7%, 치매 등 정신 질환 25.3%, 호흡기계 질환 24.0%(이상 중복) 순이었다.

문제는 이 통계가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고혈압과 당뇨병 등은 국가건강검진의 기본 항목이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의 질병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결핵을 제외한 호흡기 질환은 국가관리대상 질병이 아니다. 자각 증세도 늦게 나타나 병에 걸린 사람조차 잘 모른다. 호흡기학회가 2017년 국민건강영양조사를 토대로 추정한 만성폐쇄성 폐질환 환자는 160만 명이었지만 그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는 14만 명에 불과했다. 학계에서도 국내 호흡기 질환자의 90%는 자신이 병을 앓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국가건강검진체계 재점검해야

이를 코로나19 사태에 대입하면 사망자 중에는 호흡기 질환자가 훨씬 더 많았을지 모른다. 자신의 호흡기 관련 기저질환을 모르는 감염자가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제때 치료를 못 받아 사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음을 내포한다. 결국 ‘숨은 질환’을 안다면 코로나19 사망률을 낮추고, 완치도 앞당길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호흡기 질환은 ‘현대병’이 됐다. 최근 몇 년간 산업유해가스, 미세먼지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어 환자가 크게 늘어났을 것이라는 게 의료계의 분석이다. 세계 최악의 미세먼지에 시달리던 중국이 2017년 호흡기 질환을 국가검진 항목에 넣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다.

2000년대 이후 세계를 휩쓴 전염병인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신종플루(신종인플루엔자)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등은 모두 호흡기 관련 질병이었다. 의료계에서는 그때마다 호흡기 질환의 국가관리가 이슈였지만 상황이 바뀌진 않았다. 코로나19 사태가 마무리되면 정부는 과거 메르스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이번엔 감염병의 예방과 대응에 더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국가검진체계의 구축 등도 함께 논의되길 기대해본다.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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