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의 컬처insight] 코로나 시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문화계 실험

입력 2020-03-20 15:09   수정 2020-03-20 15:15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를 주문형 비디오(VOD)로 보려면 일정 기간을 기다려야 한다. ‘홀드백(holdback)’ 때문이다. 홀드백은 1차 플랫폼에서 상영된 후 2차 플랫폼에서 상영되는 데 걸리는 기간을 이른다. 전 세계 영화 시장에서 홀드백은 오랜 시간 깨지지 않는 법칙으로 작용하고 있다. 최근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가 홀드백을 대폭 단축시키거나 없애며 논란을 일으키긴 했지만, 이 경우를 제외하곤 늘 지켜졌고 또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배급사인 유니버설 픽쳐스는 상영 중이거나 개봉 예정인 영화를 VOD로 동시에 선보인다고 지난 18일 발표했다. 현재 극장에 상영 되고 있는 '인비저블맨'을 20일부터 VOD로 함께 제공하고, 다음달 10일 북미 개봉 예정인 '트롤: 월드투어'는 극장 개봉과 동시에 VOD로 내놓는다는 내용이다. 보통 미국에선 극장 수익을 위해 개봉한 지 90일 이후 VOD 서비스를 시작한다. 물론 이 변화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갑작스럽게 극장에 관객 수가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경제매체 쿼츠는 “오랜 전통의 스튜디오가 언젠가 닥칠 불가피한 영화 배급의 미래를 위해 이 시기를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홀드백 원칙은 OTT의 발전으로 언젠가 무너질 것이며, 이 시기에 실험을 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점쳐 보고 있다는 의미다.

오랜 시간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문화계 법칙들이 코로나 시대에 균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균열이 코로나 이후에도 이어질 수 있을지, 얼마나 큰 변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화계 관계자들은 위기 속에서도 다양한 실험들을 하면서 더 큰 기회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연 시장에서도 새로운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공연을 보러 오지 못하는 관객들을 위해 온라인 중계를 시작한 것이다. 이전에도 온라인 중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일부 공연에 한정됐고 전막보다 쇼케이스에 보다 집중됐다. 공연은 창작자와 관객이 직접 만나야만 한다는 오랜 원칙 때문이다.

이번엔 분위기가 다르다. 많은 국내외 주요 공연들이 영상으로 제공되고 있다. 해외에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빈 국립 오페라 등 세계적인 단체들이 온라인 중계 및 무료로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오는 22일까지 매일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오페라 한 편씩을 공개하고, 20시간 동안 무료로 볼 수 있게 했다. '일 트로바토레' '라 트라비아타' 등 평소 제목은 들어봤지만 정작 본 적은 없었던 사람들도 해외 유명 단체의 공연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빈 국립 오페라도 지난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매일 한 편씩 자체 스트리밍 사이트에 24시간 무료로 제공한다. 이미 온라인으로 지난 공연을 제공하고 있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유료 서비스인 ‘디지털콘서트홀’을 30일간 무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다수의 공연들이 네이버TV 등을 통해 생중계 되고 있다. 이를 통해 공연의 진입 장벽 낮추고 외연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인류 역사상 이토록 전 세계 문화계가 동시에 심각한 위기에 놓인 때가 있을까 싶다. 물론 대부분의 산업이 그러하지만, 문화계는 고유의 특성으로 인해 더 타격이 크다. 관객이 극장과 공연장에 있어야만 하는 '현장성' 때문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과감한 혁신은 위기 속에서 이뤄져 왔다. 오랜 시간 지켜온 틀을 스스로 깰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위기를 극복하고 한 걸음씩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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