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금융위기때도…'경제관료'가 중심이었다

입력 2020-03-23 17:32   수정 2020-03-24 01:37

“대통령은 나를 기술자로 대했고, 정책에 대해 한 번도 간섭한 적이 없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 극복의 ‘소방수’ 역할을 했던 이헌재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회고록 《위기를 쏘다》에서 한 말이다.

김대중 대통령(DJ)이 ‘경제 기술자’로서의 전문성을 전적으로 믿고 일을 맡겨줬다는 얘기다. 인사부터 그랬다. 이 전 위원장은 1997년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진영에서 일한 인물이다. 김대중 정부 첫 재정경제부 장관인 이규성 전 장관 역시 발탁 전 DJ와 일면식도 없었다. 하지만 DJ는 ‘코드’와 상관없이 경제 정책을 제일 잘할 수 있는 인사를 중용했다. 대통령의 전폭적인 신뢰 덕분에 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 장관 등 경제팀은 부실 금융회사·대기업 구조조정, 자본시장 개방, 노동시장 유연화 등 굵직한 대책을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은행·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선 상당한 저항에 부딪히기도 했지만 경제팀은 처음 정한 구조개혁 원칙을 좌고우면하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 결과 제조업 기업 부채비율은 1998년 303.0%에서 2001년 182.2%로, 은행 부실여신(무수익여신) 비율은 1999년 8.3%에서 2001년 2.9%로 크게 개선됐다. 제일은행 헐값 매각 등 일부 대책은 성급했다는 지적도 받았지만, ‘성공적으로 위기를 타개했다’는 게 경제팀에 대한 대내외 평가다. 2001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서 조기 졸업한 것이 단적인 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정치가 아닌 경제 관료가 중심을 잡는 전통이 이어졌다. 2009년 2월 소방수로 투입된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이 제일 처음 한 일은 그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에서 ‘-2%’로 낮춘 일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처음엔 “너무 하락폭이 크다”고 우려했지만 윤 전 장관이 “현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시장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고 설득하자 받아들였다. 윤 전 장관은 청와대의 신뢰 속에 그해 4월 역대 최대 규모인 28조4000억원의 추가경정예산 편성도 관철시켰다.

확실한 역할 분담에 따라 신속한 정책 의사결정이 이뤄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위기 초기인 2008년엔 강만수 기재부 장관과 전광우 금융위원장,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팀을 이끌었다. 당시 금융위는 채권시장·증권시장 안정펀드, 은행자본 확충펀드, 금융안정기금 등을 발 빠르게 도입해 금융 불안이 시스템 위기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기재부와 한은은 거시경제 안정 대책은 물론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외환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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