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 개봉 미룬 '사냥의 시간', 넷플릭스 직행…영화계 '충격'

입력 2020-03-23 16:52   수정 2020-03-24 00:36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극장 개봉을 미룬 영화 ‘사냥의 시간’이 결국 넷플릭스행을 택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극장 관객 급감으로 개봉하지 못한 한국 영화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으로 공개 방법을 바꾼 첫 사례여서 영화계에 큰 파장이 일고 있다. 개봉을 앞둔 영화들이 ‘사냥의 시간’의 선례를 따라 극장 개봉 없이 OTT 공개를 택하면 영화산업 생태계에 지각변동을 몰고 올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배급사 리틀빅픽처스는 ‘사냥의 시간’을 극장 개봉 없이 다음달 10일 넷플릭스를 통해 190여 개국에 29개 언어로 공개한다고 23일 밝혔다. 넷플릭스도 이날 자료를 내고 “세계적으로 한국 영화에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며 “또 한 편의 웰메이드 콘텐츠인 ‘사냥의 시간’을 전 세계 회원들에게 선보일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개봉을 앞둔 한국 영화가 넷플릭스로 직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에 초청 상영돼 호평을 받은 이 영화는 지난달 26일 국내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가 급속히 확산되자 개봉을 미뤘다.

‘사냥의 시간’은 새로운 인생을 위해 위험한 작전을 계획한 네 친구와 이를 쫓는 정체불명의 추격자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다. ‘파수꾼’으로 호평받은 윤성현 감독의 신작으로 이제훈, 안재홍, 최우식, 박정민, 박해수 등 충무로를 이끄는 젊은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올 상반기 흥행 기대작으로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리틀빅픽처스 관계자는 “코로나19 위험이 지속되고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더 많은 관객에게 안전하게 만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한 끝에 넷플릭스에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제작사인 싸이더스 관계자는 “세계 극장업계가 셧다운 공포로 떨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관객에게도 보여주기 위한 고육책”이라며 “성수기인 여름 시장에는 블록버스터들이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개봉을 계속 미루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순제작비 90억원, 홍보마케팅배급비 27억원 등 총제작비 117억원 규모인 이 작품은 개봉을 한 주 앞두고 일정이 미뤄져 마케팅 비용을 이미 소진한 데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개봉 일정을 다시 잡기 어려워지자 차선책을 택했다는 분석이다. 리틀빅픽처스 측은 “넷플릭스와 계약하며 판매가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 판매금액은 총제작비를 약간 웃도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냥의 시간’의 해외 판매사인 콘텐츠판다는 리틀빅픽처스에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콘텐츠판다 관계자는 “리틀빅픽처스가 이달 초 일방적으로 계약해지 통보를 했다”며 “명백히 이중계약이라서 소송을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30여 개국에 작품을 선판매했고 계약금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리틀빅픽처스 관계자는 “피해를 최대한 보상하겠다고 얘기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계약해지를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극장들도 ‘사냥의 시간’의 넷플릭스행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영화 생태계 측면에서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중급 영화들의 스크린 포기 사태가 줄지어 일어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극장들은 최근 신작 개봉이 없어 재개봉작으로 연명하고 있다. 볼 만한 개봉작이 없다 보니 관객 수가 갈수록 줄어드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지난 주말(21∼22일) 극장 전체 관객은 13만4925명으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집계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극장들은 다른 영화들도 넷플릭스행을 택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현재 코로나19 여파로 개봉 일정을 못 잡은 영화만 50편이 넘는다. 영화계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극장들의 영향력은 더욱 감소할 것”이라며 “투자 제작 단계에서부터 OTT와 계약하는 한국 영화가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대 의견도 있다.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로 가면 제작비를 회수하는 정도에 그친다”며 “흥행성 있는 기대작들은 극장 개봉을 고집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코로나19 사태를 빨리 극복할 경우 한국 영화에 오히려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디즈니와 워너브러더스 등 할리우드 제작사들과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영화 제작을 일제히 중단하면서 블록버스터부터 독립영화까지 줄줄이 올스톱됐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막대한 제작비가 들어가는 할리우드 영화들은 북미뿐만 아니라 유럽, 아시아, 남미 시장 등이 모두 안정돼야 공개할 수 있다”며 “대부분 내수시장에 의존하는 한국 영화들은 한국에서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할리우드 경쟁작이 없어 보다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재혁 대중문화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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