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코로나 블루에 걸린 직장인들

입력 2020-03-23 17:08   수정 2020-03-24 00:51


유통업체에 다니는 이 대리는 요즘 퇴근 후 보도 전문 채널부터 튼다. 자주 보던 예능 프로그램이나 넷플릭스는 잊은 지 오래다. 매일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눈으로 확인하면 기분이 우울해지지만 중독처럼 볼륨을 키운다. 쉴 새 없이 날아드는 재난문자는 받자마자 가족들과 공유한다. 이 대리는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점점 뉴스에 얽매이고 있다”며 “밖에 나갈 수 없어 집에 갇혀 있으니 피로도는 더 높아졌다”고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한숨을 쉬는 직장인이 늘고 있다. 뉴스를 보면서 ‘혹시 나도?’ 하는 불안을 느끼기 십상이다. 집 현관문은 물론 주식창도 열어보기 두렵긴 마찬가지다. ‘코로나 블루’(코로나 사태로 인한 우울증 또는 무기력증)에 시달리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상상 코로나’ 시달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직장인에게 가장 흔해진 병은 ‘건강 염려증’이다. 서울 여의도의 한 금융공기업에 다니는 김 과장은 요즘 목이 잠시만 칼칼해져도 걱정이 태산이다. 밖에만 나가면 가래가 끼거나 열이 오르는 듯하다. 일명 ‘코로나 염려증’이다.

실제 코로나19를 예방하다가 후유증을 겪는 사람들도 있다. 서울의 한 제약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는 매일 마스크를 쓰고 다니다가 접촉성피부염에 걸렸다. 마스크를 잠시 벗을 때마다 벌겋게 달아오른 양쪽 볼이 눈에 거슬린다. 김 대리는 “학창 시절에도 여드름 걱정 없이 살았는데 너무 속상하다”며 “그렇다고 마스크를 벗고 다닐 수도 없으니 더 큰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확찐자’(집에만 있어 살이 확 찐 자를 뜻하는 신조어)의 고민도 매일 커져만 간다. 경기 안산에서 서울로 매일 출퇴근하던 최 대리는 한 달 새 몸무게가 3㎏이나 불었다. 이번달 회사가 재택근무를 도입하면서 교대로 출근하다 보니 칼로리 소모량이 줄었기 때문이다. 꾸역꾸역 마스크를 쓴 채 1주일에 한두 번은 헬스장을 가던 것도 이번주부터 정부 지침으로 어려워졌다. 최 대리는 “스트레스를 받으니 안 먹던 자극적인 음식까지 찾게 된다”며 “2주간 헬스장도 문을 닫는다는데 몸이 얼마나 더 불어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식·부동산 어쩌나…‘지갑 스트레스’도

연일 급락하는 증시에 속을 태우는 직장인도 많다. ‘언젠가 오르겠지’ 하는 마음으로 빚까지 내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본 사람이 부지기수다. 한 통신사에 다니는 유 대리의 팀은 전 팀원이 울상이다. 코스피지수 2000선이 깨지자마자 팀장 권유로 하나둘씩 주식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유 대리는 “초반에는 점심시간마다 주식 얘기를 했지만 이제는 얘기도 안 꺼낸다”며 “스마트폰으로 매일 주가를 확인하다 보면 팀장이 원망스럽지만 대놓고 말할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부동산 시장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서울 금호동의 한 아파트를 8억원에 산 윤 사원은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까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해 매입한 탓에 그는 월급의 절반가량을 대출 상환에 쓴다. 그는 “세계 증시를 비롯해 금, 채권 등 안전자산까지 급락하는 걸 보니 부동산 시장도 머잖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늦게나마 내집을 마련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후회막심”이라고 말했다.

“차라리 회사 가고 싶어”

길어지는 재택근무로 인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내부부인 윤 과장(36)과 오 과장(36)은 요즘 다툼이 잦다. 두 사람 모두 재택근무를 하면서 부딪칠 일이 늘었다. 윤 과장은 “집에 PC가 하나뿐인데 교대로 쓰다 보니 재촉하다가 짜증을 내게 된다”며 “하루종일 같이 지내면서 끼니 해결부터 여러 가지로 애로사항이 많다”고 전했다.

27개월 된 아들을 둔 임모 과장도 최근 아이와 업무를 동시에 챙기느라 신경이 곤두서 있다. 베이비시터와도 갈등이 생겼다. KF94마스크가 아니라 덴탈마스크를 쓰고 온 걸 보고 불편함을 나타낸 게 화근이었다. 임 과장은 “밖에 나갈 때마다 마음이 불안해 라텍스장갑을 끼고 다닌다”며 “점점 유난스러워지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가 있다 보니 불안함을 떨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류회사에 다니는 정 과장은 지갑이 얇아진 기분이다. 평상시 야근이 잦았는데 재택근무 시행 후 집에서 야근을 해도 회사에서 수당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정 과장은 “집에서도 똑같이 밤마다 일하는데 야근수당이 안 나오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1주일에 한 번 당번으로 회사에 들어갈 때마다 야근하려고 일을 모아둔다”고 털어놨다.

행사도 취미도 뒷전…“봄은 언제쯤”

코로나19 사태로 중요한 행사나 취미생활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워졌다. 교사인 김씨는 결혼식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파 온다. 오는 6월 잡아놓은 결혼 날짜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다. 스튜디오 사진 촬영, 드레스 투어, 신혼집 투어까지 할 일이 산더미지만 집 밖을 나서는 게 두렵기만 하다. 김씨는 “혹시 코로나에 걸려 동선이 공개되면 ‘열심히도 돌아다녔다’는 비난을 받을까 두렵다”며 “행복해야 할 결혼 준비 기간에 우울하기만 하다”고 호소했다.

한 금융업체에 다니는 전모 사원의 유일한 취미는 ‘혼코노’(혼자 코인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기)다. 하지만 유일한 낙을 빼앗긴 지 한 달이 넘었다. 호흡기 분비물이 직접적으로 튈 우려가 있는 코인노래방은 코로나 시국에 가장 위험한 곳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전 사원은 “스트레스가 그 어느 때보다 많지만 정작 스트레스 풀 곳이 없는 게 문제”라며 “코로나19 사태가 사라져야 진정한 봄이 올 것 같다”고 토로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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