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의 논점과 관점] 힘겨운 '길리어드 따라하기'

입력 2020-03-24 18:21   수정 2020-03-25 00:18

‘제약업계의 애플’ ‘초고속 성공신화’ ‘기업의 혁신 롤모델’…. 미국 제약·바이오기업 길리어드 사이언스를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길리어드는 2009년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신종플루를 종식시킨 치료제 ‘타미플루’ 개발 업체로 유명하다. 세계 최초의 C형 간염 완치제 ‘소발디’와 ‘하보니’, 에이즈·B형 간염 치료제 ‘비리어드’도 이 회사가 내놓은 혁신 신약이다. 세상에 없는 바이러스 치료제 개발에 매진한 덕분에 회사 설립 27년(2014년) 만에 세계 10대 제약사로 도약했다.

길리어드는 코로나19가 대유행하는 요즘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르면 5~6월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는 ‘렘데시비르’를 보유하고 있어서다. 렘데시비르는 코로나19의 ‘제1호 치료제’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임상시험에서 상태 호전 등 유효한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경쟁 치료 물질과 달리 독성과 부작용이 별로 없다.

영업이익률 41%…혁신의 상징

길리어드는 혁신을 거듭하는 미국 제약산업의 저력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꼽힌다. 미국은 세계 1위 화이자 등 글로벌 50대 제약사 중 17개사를 보유하고 있다. 미국 제약사들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3.1%(2018년)에 달한다. 길리어드의 영업이익률은 40.8%로 압도적인 1위다. 길리어드는 약품 생산의 대부분을 외주로 돌리고, 본업인 신약 개발에만 몰두한다. 미국 본사 직원 중 연구개발자 비율이 45%에 이른다. 높은 영업이익률과 본업(연구개발) 집중이 돋보여 ‘제약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이유다.

길리어드는 신약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 인수합병(M&A)에도 적극적이다. 2011년 간염치료제 개발 업체인 파마셋을 사들이는 등 모두 17차례 M&A를 성사시켰다. 길리어드 성장에는 벤처캐피털의 과감한 투자도 큰 역할을 했다. 회사 설립 후 15년간 적자를 내고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벤처캐피털의 든든한 지원 덕분이었다.

길리어드는 세계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이상적인 ‘따라하기 대상’으로 꼽힌다. 국내에서도 셀트리온, 한미약품, SK바이오팜 등이 롤모델로 삼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국내 기업들은 제대로 길리어드 흉내도 못 낸다. 매출의 10~15%를 연구개발에 쏟아붓는 등 신약 개발에 승부를 걸고 있지만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R&D 발목잡는 주52시간

주 52시간 근로제와 M&A를 가로막는 출자 규제, 초기 기업 투자 위주의 벤처캐피털 관행 등이 대표적이다. 연구개발의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이 인가하면 한시적으로 1주에 12시간을 초과 근무할 수 있지만 절차가 까다롭고 노조 반대가 심하다. 신약 개발 성공률이 0.02%에 불과해 밤낮으로 연구개발에 매달려도 승산을 가늠하기 어려운 게 제약업계 현실이다. 획일적인 근로시간 단축은 자금력과 연구 인력이 부족해 ‘몸으로 때워서(연구개발 속도전)’ 불리함을 극복해야 하는 국내 제약사들엔 가장 치명적인 규제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국민 보건·안전을 우선적으로 지켜줄 자국의 혁신 신약 개발사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틈만 나면 과감한 규제 혁파를 통한 바이오산업 육성을 외친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이대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글로벌 제약사와의 연구개발 역량이 좁혀지기는커녕 더 벌어질 판이다. 정부가 ‘코로나 대처 모범사례’를 자화자찬하고 자기 만족에 빠져 있는 사이에 ‘바이오 강국’의 꿈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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