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델타항공 메이시스 등 굵직한 미국 기업들의 신용등급이 줄줄이 투기등급(정크본드)으로 강등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자금 사정이 악화된 탓이다. 투자등급 회사채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BBB 채권이 대거 정크본드로 추락하면서 회사채발(發) 금융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다.
포드 채권 360억달러 정크본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5일(현지시간) 포드의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BB+’로 낮췄다. 투자등급의 맨 아래 단계에서 투기등급으로 내린 것이다. S&P는 “(코로나19로 인한) 공장 폐쇄가 예상보다 길어질 수 있다”며 “잠재적 침체 우려가 현금 유동성을 악화시키고 부채 비율을 높일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이에 따라 포드가 발행한 360억달러 규모의 채권이 모두 정크본드가 됐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포드의 정크본드 추락은 2005년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가 동시 강등된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등급 하향”이라며 “전문가들은 1조2000억달러 규모의 정크본드 시장이 포드 채권을 소화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작년 9월 포드의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했던 무디스도 이날 신용등급을 Ba1에서 Ba2로 한 단계 더 낮췄다.
S&P는 전날 델타항공의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두 단계 낮춰 투자등급에서 투기등급으로 떨어뜨렸다. 또 지난 20일엔 백화점 메이시스를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내렸다. 무디스는 18일 셰일회사 옥시덴털페트롤리엄의 신용등급을 Baa3에서 투기등급인 Ba1으로 낮췄으며 17일엔 루프트한자를 Baa3에서 투기등급인 Ba1으로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떨어진 기업을 ‘타락 천사(fallen angel)’라고 부른다. 작년엔 타락 천사가 13개였다. 하지만 올 들어 크래프트하인즈, 스피릿에어로시스템, 아폴로인베스트먼트, EQT, EQM미드스트림파트너스 등 벌써 10여 개에 달한다.
통상 투자등급의 맨 아래인 BBB 회사채가 투기등급이 되면 투매가 발생한다. 기관투자가들은 위험관리규정에 따라 정크본드를 보유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채권 금리가 급등하고 발행 및 거래가 중단되면서 파산에 몰릴 수 있다. 실제 포드가 발행한 2026년 만기 15억달러짜리 채권은 이달 초 달러당 100센트 이상에서 거래됐지만 이날 달러당 77센트로 급락했다. 타락 천사가 많아지면 채권 시장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BBB 채권 3조7000억달러
문제는 이런 BBB 회사채가 엄청나게 많다는 것이다. UBS에 따르면 BBB 채권은 모두 3조7000억달러 규모로 전체 투자등급 회사채 시장의 53%를 차지한다. 2007년(8000억달러)보다 네 배 이상 많아졌다. 지난 10년간 호황과 저금리가 겹쳐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부풀려 부여한 탓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4일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둔화에 따라 신용평가사들이 기업 부채 상환능력을 재평가하면서 신용등급 강등 파도가 발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JP모간은 올해 타락 천사가 되는 BBB급 채권이 2150억달러 규모로 기존 기록인 2005년 수치(1000억달러)를 넘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이날 국채와의 스프레드(금리 차이)가 10%포인트를 넘어서거나 가격이 달러당 80센트 이하로 떨어진 소위 ‘스트레스 징후’가 나타난 채권이 모두 9340억달러어치에 달해 1주일 만에 네 배로 늘었다. 이는 2009년 4월 이후 가장 많다.
BBB 회사채의 줄강등이 예고되자 투자자들은 미리 자금을 빼고 있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지난주(19일까지) 미국 회사채 시장에선 1080억달러가 빠져나갔다. 기존 기록의 네 배에 달하는 신기록이다.
이에 따라 정크본드의 스프레드는 25일 10%포인트가 넘어 한 달 전인 2월 19일의 3.44%포인트에서 크게 뛰어올랐다. 특히 셰일업체가 몰려 있는 에너지기업 정크본드는 23.2%포인트까지 폭등한 상태다. 미 중앙은행(Fed)이 세컨더리 마켓 기업신용기구(SMCCF)를 설치해 회사채를 매입하기로 했지만 매입 대상은 투자등급 채권뿐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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