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중앙은행의 중앙은행

입력 2020-04-01 18:15   수정 2020-04-02 00:14

외환위기 당시 강경식 경제부총리는 “펀더멘털은 튼튼하다”고 했다가 온갖 비아냥을 들었다. 따져보자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정부 부채가 GDP의 11%에 불과했다. 그 덕분에 대규모 공적자금 동원이 가능했다. 기업부채비율이 치솟았지만 산업경쟁력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구제금융 이듬해부터 경상흑자로 전환할 수 있었던 이유다.

당시 문제는 달러 부족이었다. 국고에 돈이 있어도 ‘세계통화’ 달러가 아니면 소용이 없다. 억울해도 그게 1944년 브레턴우즈 회담으로 틀이 잡힌 전후 국제질서다. 영국 대표 케인스가 당시 담판장에서 세계 단일통화 도입을 제안했지만 ‘뜨는 해’ 미국에 의해 거부당했다. 대신 미국은 거대한 자국 시장을 동맹국에 완전 개방하고, 해군력으로 국제무역의 안정성을 보장하겠다는 대담한 제안을 통해 달러 시대를 열었다.

해외로 달러가 무제한 공급돼야 유지되는 시스템하에서 미국 중앙은행(Fed)의 역할 증대는 자연스럽다. 달러를 풀면서 가치도 유지하는 과업을 무난히 수행한 덕에 Fed는 ‘아우라’를 지니게 됐지만, 1914년 출범 이후 한동안은 혹평 받았다. 뱅크런(대규모 자금유출)과 금융위기에 무기력했기 때문이다. Fed의 엉뚱한 통화긴축정책이 ‘작은 공황’을 대공황으로 만들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환골탈태는 1979년 취임한 폴 볼커 의장 시절부터다. 그는 미국 경제의 골칫거리 인플레이션을 잡아냈다. 후임 그린스펀은 ‘골디락스’를 이끌었다.

2년 전 제롬 파월 시대가 시작됐다. 정통 경제학자 출신이 아닌 파월은 존재감이 약했지만 코로나 쇼크를 맞아 놀랄 만큼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규모 ‘통화스와프 협정’으로 달러를 풀더니, 그제는 각국 중앙은행을 상대로 ‘달러 RP(환매조건부채권)거래창구’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통상 중앙은행이 시장을 상대로 하는 RP거래를 세계의 중앙은행들을 상대로 열어 달러 가뭄을 해소한다는 묘책이다.

달러가 ‘고픈’ 우리로서는 안전판이 생겨 다행스럽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달러 지키기’라는 미국의 속내가 읽힌다. 코로나 쇼크가 통제불능이 되면 달러 패권도 위험해진다. 각자도생이 시작되면 새로운 질서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이후 세상은 확실히 지금과는 상당히 다를 것이란 심증이 더 굳어진다.

백광엽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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