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현의 논점과 관점] 기업이 곧 '사회 안전망'이다

입력 2020-04-21 17:11   수정 2020-04-22 00:39

‘코로나19 쇼크’가 본격화된 뒤 미국에서 아마존의 존재감은 단순히 기업 하나 수준에 머무는 게 아니다. 고립된 소비자들에게 생활필수품과 의료용품을 배송하고, 84만 명에 달하는 전 세계 직원의 최저임금을 인상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에 클라우드 기술을 제공해 코로나19 퇴치에 도움을 주고 있다. 미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지적했듯 과거 적십자가 담당했던 ‘사회 안전망’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미증유의 위기에 대한 세계 주요 기업의 대응은 이들의 존재 이유가 더 이상 ‘이윤 추구’에 국한돼 있지 않음을 잘 보여준다.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주주서한에서 밝힌 대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기업이 정부 역할 하는 세상

정부가 허둥대는 와중에 앞장서 고용을 창출하고, 인프라를 재건한 것은 기업들이다. 아마존은 모자란 일손을 채우기 위해 3월 이후에만 17만여 명의 신규 채용을 단행했다. 국내에서는 삼성·SK·롯데그룹이 상반기 공채를 진행 중이다. 정유·유통 등 주력 계열사가 최악의 실적으로 고전하고 있는데도 고용 창출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지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애플은 정부 요청이 있던 것도 아닌데 “최전선 의료 영웅들을 지원하기 위해”(팀 쿡 CEO) 안면 보호대를 자체 개발해 공급했다. 삼성이 그룹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마스크 필수 소재인 필터를 대량으로 확보하지 못했다면 ‘마스크 대란’이 언제까지 이어졌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쿠팡 등 인터넷 쇼핑몰 기업들이 촘촘하게 구축한 물류망은 사재기를 막아 한국이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한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세계가 코로나 치료제 후보 ‘렘데시비르’ 임상에 한창인 미국 길리어드만 쳐다보는 것은 이 사태를 종식시킬 주인공이 정부가 아니라 기업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위기 때 기업의 힘을 확인한 주요국은 방역에 어려움을 겪는 와중에도 기업 살리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중앙은행이 나서 ‘투기 등급’ 회사채까지 사주는 등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은 기업가치가 크지 않은 스타트업까지 살린다며 조(兆) 단위 자금을 투입하는 게 현실이다.

'위기 극복 파트너' 인식 절실

그런데 한국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지속돼온 기업 홀대가 위기 국면에서조차 이어지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운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유동성 공급의 키를 쥐고 있는 금융당국자들이 “대기업은 시장에서 스스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며 지원에 난색을 보이는 판국이다. 미·중 무역전쟁과 각종 규제에 발목 잡혀 한국 기업들의 기초체력이 떨어진 와중에 ‘코로나 충격’까지 겹쳐 휘청거리는 게 현실인데도 그렇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들의 순이익 증감률은 -47.6%로, 미국(S&P500·6.1%) 유럽(유로스톡스50·-10.6%)에 비해 실적이 크게 악화됐다. 퀀트와이즈가 추정한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1분기 순이익 증감률도 -40.8%에 달한다.

기업은 지금 위기 극복의 길을 정부와 함께 걷고 있는 동반자다.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이인삼각(二人三脚) 경주에서 파트너가 취해야 할 태도는 명확할 것이다. 기업이 ‘돈가뭄’에 쓰러지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지원해 사회 안전망을 두텁게 하고,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는 아마존 등이 입증한 대로 대(對)국민 서비스의 효율성 제고 측면에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scre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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