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딸들이 추억하는 '국민화가' 박수근·장욱진의 일상

입력 2020-04-23 18:34   수정 2020-04-24 03:25

“내가 중학교에 들어갈 때 동생 성민이는 다섯 살, 인애는 고작 두 살밖에 되지 않았다. 자식이 자식을 키운다던 말이 통용되던 시대였다. 성민이와 인애가 새근새근 잠들며 내 등 뒤에 스며넣던 온기가 여전히 따뜻하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즐겨 그리셨다.(중략) ‘아기 업은 소녀’라는 작품은 그렇게 만들어졌다.”(박인숙)

“다른 건 다 잊어도 어머니의 생신과 결혼기념일은 절대 잊지 않고 행사를 해주셨다. 그렇다고 큰 잔치를 열어줄 수는 없으니 아버지의 전시회를 항상 결혼기념일이 있는 4월과 어머니의 생신이 있는 9월에 여셨다. 가족 누구든 아버지가 화가 장욱진이라 힘들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는 특별한 사랑을 받았다.”(장경수)

한국 근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1914~1965)과 장욱진(1917~1990)의 맏딸인 박인숙 화백(76), 장경수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명예관장(75)이 각각 아버지를 회고한 책 《내 아버지 박수근》과 《내 아버지 장욱진》을 출간했다. 역사적 격변의 시대, 가난과 불안한 삶 속에서도 맑고 따뜻했던 두 거장의 인간적인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본 자식의 기억으로 반추하고 들려준다.

‘국민 화가’ 박수근은 평생 가난하게 살았다. 딸은 그래서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프고 서러웠던 기억은 뒤로 접고, 박수근의 그림처럼 멈춰진 지붕과 사람들, 나무 사이를 오가는 단란하고 정겨운 이야깃거리를 책에 담아냈다.

박인숙 화백은 ‘거장 박수근’에 앞서 따뜻한 아버지로 추억한다. 할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한 젊은 날의 파란만장했던 고생담, 부잣집 소녀였던 어머니와의 러브스토리 및 연애편지, 평생 로맨티스트였던 아버지의 일화, 가족·이웃·동네를 주로 그렸던 이야기, 고생과 설움 끝에 장만한 서울 창신동 집에서의 평화로운 일상 등이 고즈넉한 풍경처럼 펼쳐진다.

‘아버지가 집을 장만하시고 창작에 몰두하면서 마루에는 온통 크고 작은 그림들이 벽을 빈틈없이 가득 메웠다. 그러니까 그 벽에는 아버지가 화폭에 옮겨두신 우리 동네의 산과 개울, 소박한 나무와 이웃들이 죄다 모여 있었던 것이다.’

가족과 나무, 아이, 새 등 일상의 이미지를 소박하고 정감 있게 그렸던 장욱진. 그는 머리만 깎지 않았을 뿐 스님처럼 생활이 단출했고, 평생 명예와 돈을 좇지 않고 붓 하나에 의지하며 그림에만 몰두했다. 1990년 12월 갑작스레 타계한 그의 방에는 입적한 스님의 방처럼 남아 있는 게 없었다고 한다.

그래도 가족에 대한 사랑만큼은 각별했던 모양이다. 장 관장은 “아버지의 그림 중에는 가족도가 많은데 가족에 대한 미안함, 그리움, 사랑의 표현으로 보인다. 아버지는 ‘나는 가족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방식은 다르다’고 말씀하시곤 했다”고 회상했다. 학교 가는 딸아이를 위해 날마다 연필을 깎아서 필통에 넣어주고, 술 마시는 아빠를 미워했더니 딸의 방문에 오늘부터 술을 먹지 않겠다는 뜻으로 술병과 컵을 거꾸로 그린 그림을 붙여놓고 나갔다는 이야기 등이 미소를 머금게 한다.

무욕의 삶을 살았던 아버지를 장 관장은 이렇게 기억했다. ‘누군가 당신 그림을 좋아하거나 아버지가 마음에 들면 나눠주기는 해도 그림이 돈으로 환산되는 무엇이라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바라는 것은 잘 팔리는 화가가 아니라 당신이 그릴 수밖에 없는 그림, 당신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이었다.’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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