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IT인사이드] 5G가 코로나를 퍼뜨렸다고?

입력 2020-04-24 17:39   수정 2020-04-25 00:08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Manners maketh man).”

2015년 개봉한 영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유명한 대사다. 영국 신사인 비밀요원 해리 하트(콜린 퍼스 분)가 술집에서 버릇없는 동네 건달들을 ‘참교육’하며 뱉는 말이다. 이 영화의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또 하나 백미는 영화 말미의 대량 폭발신이다. 주인공 에그시(태런 에저턴 분)가 악당 리치먼드 밸런타인(새뮤얼 잭슨 분)의 계략을 역이용해 그에게 동조한 전 세계 사회 지도층의 머리에 심어진 생체 보안칩을 폭파시킨다. 엘가의 ‘위풍당당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줄줄이 머리가 터져나가며 버섯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습은 괴기하면서 우스꽝스럽다.

영화에서 밸런타인은 지구를 살리기 위해 인류를 제거할 계획을 세운다.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CEO)답게 휴대폰을 이용한다. 그는 무료로 모바일 데이터를 쓸 수 있는 유심카드를 전 세계에 나눠준다. 이 유심카드는 사람들의 폭력성을 강화하는 전파를 내뿜어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게 만든다.

전파가 사람들의 폭력성을 증폭시킨다는 이야기는 순전히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하지만 가끔 현실은 영화를 뛰어넘는다. 올해 들어 세계적으로 유행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5세대(5G) 이동통신 기지국을 통해 전파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전파로 바이러스를 옮기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이달 초 영국 등 몇몇 지역에선 기지국 방화 사건이 잇따라 벌어졌다.

이 같은 행동은 바이러스에 대한 무지와 이에 따른 공포에서 일어났다. 무지에서 비롯된 공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고 흔하다. 한낮에 태양이 사라지는 개기일식 현상은 신의 노여움이나 질병의 예고로 받아들여졌다. 인류 최악의 전염병으로 손꼽히던 흑사병이 창궐한 중세 유럽에선 ‘마녀 사냥’이 횡행했다. 사람들은 악마의 사주를 받은 마녀를 불태워 공포에서 벗어나려 했다.

인류가 암흑시대를 벗어난 뒤에도 무지에 대한 공포는 여전했다. 대신 대상이 초자연적 현상에서 기술로 바뀌었다.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 초반 영국에선 기계에 대한 공포가 들끓었다. 사람들은 거대한 증기기관이 방직기를 돌리는 모습에서 초자연적인 공포를 느꼈다. 동시에 이 기계들과 생존 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실존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 결과가 기계를 부수는 러다이트 운동이다.

기술에 대한 공포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상징하는 5G와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사물인터넷(IoT) 등은 종종 ‘악의 무리’가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려진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많은 공포의 대상이 되는 기술은 역시 AI다. 인간이 창조한 AI에 되레 지배당할 수 있다는 공포는 앨런 튜링이 1950년 AI의 개념을 제시한 뒤로 끊임없이 이어졌다. 오늘날 AI가 사람의 일자리를 대체하고 있는 현상도 이런 감정을 부채질한다.

영화도 시대상에 따라 변했다. 지난해 개봉한 공포 영화 ‘사탄의 인형’이 단적인 예다. 이 영화는 1988년 나온 유명한 영화의 리메이크다. ‘처키’란 이름의 인형이 사람들을 죽인다는 내용은 원작과 같다. 달라진 점은 인형의 정체다. 원작의 인형은 살인마의 영혼이 들어간 ‘귀신들린 인형’이다. 이에 비해 리메이크에선 AI가 장착된 인형으로 나온다. 30년 새 공포의 대상이 악령에서 AI로 바뀐 셈이다.

AI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인간의 뇌와 AI가 결합해 인간의 능력이 무한대로 확장될 것”이란 의견(레이 커즈와일)부터 “100년 내 AI가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는 의견(스티븐 호킹)까지 다양하다. 석학들마저 제각각 의견을 내고 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역사 속의 모든 무지와 공포는 한때의 ‘해프닝’으로 기록됐다는 사실이다. 유발 하라리가 말한 것처럼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건 무지와 공포, 타인에 대한 증오”가 아닐까.<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생각하는 기계' 개념 제시한 앨런 튜링

“기계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1950년 ‘계산기계와 지능(Computing Machinery and Intelligence)’이란 논문을 통해 기계가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튜링은 이 논문에서 ‘튜링 테스트’란 개념을 제시했다.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따져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 판별하는 식이다.

수십 년간 숱한 컴퓨터가 이 테스트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2014년 ‘유진 구스트만’이란 슈퍼컴퓨터가 이 테스트를 통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5분간 대화를 통해 심사위원 33%에게 인간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

튜링 테스트의 또 다른 이름은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영국 드라마 ‘셜록’으로 잘 알려진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한 2014년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는 튜링이 2차 세계대전 중 독일군의 암호 체계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기계 ‘크리스토퍼’를 개발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튜링은 2차 대전의 영웅이지만 동성애자란 이유로 유죄판결을 받고 강제로 호르몬 주사를 맞는 등 탄압을 당했다. 그는 1954년 청산가리가 든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국 정부는 2009년 그의 죽음을 정식 사과했고, 지난해 50파운드 지폐 초상 인물로 선정했다. 그의 얼굴이 그려진 지폐는 내년부터 유통된다.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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