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나종선 전 유암코 본부장 "워크아웃 성공률, 예전만 못한 이유는"

입력 2020-05-09 00:20   수정 2020-05-09 00:22

≪이 기사는 05월04일(11:02)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외환위기 후 한동안 기업 구조조정에서 성공적으로 활용되어 온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기업을 살리는 힘이 예전만 못합니다. 기업의 환경도, 채권단의 분위기도 모두 달라졌기 때문이죠."

나종선 오퍼스프라이빗에쿼티(PE) 운영부문 대표는 최근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기업의 상태가 더 좋으면 워크아웃, 안 좋으면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라는 도식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워크아웃의 초기 설계자 중 한명이었던 그는 지금 상황에선 법정관리 체제가 더 맞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나 대표는 우리은행 출신으로 외환위기 때부터 지금까지 약 20여년 간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했다. 외환위기 때 이헌재 당시 초대 금융감독위원장과 이성규 전 유암코 사장 등과 호흡을 맞췄던 우리은행의 핵심 팀원이었다. 이후 우리은행 기업개선부장까지 지낸 뒤 2015년 11월 유암코의 초대 기업구조조정 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8년 유암코가 투자한 백판지 회사 세하에서 부사장을 맡다가 지난 4월부터 오퍼스PE로 출근했다. 오퍼스PE의 투자 등은 김정호 대표가, 운영 문제는 나 대표가 각각 맡는 공동대표 체제다.

영어로 워크아웃(work-out)은 몸을 튼튼하게 하는 모든 행위를 포괄한다. 기업의 재무 상태를 좋게 하는 전반적인 행위가 워크아웃으로 통칭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통상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을 통한 채권단 관리 체제를 워크아웃으로 일컫는다. 기촉법상 워크아웃의 특징은 채권단의 75% 동의가 구성되면 이를 전체 채권단에 적용한다는 점이다. 반대하는 채권단은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해 빠질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법으로 이런 방식을 강제하는 경우는 드물다. 법조계에서는 위헌 주장을 내놓는 이들도 있지만, 성공적이었다는 평가 때문에 기촉법은 꾸준히 일몰 시기를 연장하며 가동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후에는 2010년대 중반 조선사 등의 '자율협약' 등으로 다소 변주되어 사용되기도 하는 중이다.

나 대표는 "외환위기 후 대기업 구조조정에는 워크아웃이 효과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당시에는 은행채권이 90%에 달했고, 외환위기 때는 특정 기업, 특정 업종이 아니라 다같이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채권단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하는 필요성이 컸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중소기업은 거의 쳐다보지도 못했고, 비교적 덩치가 큰 데부터 구조조정을 하려고 했다"며 "처음에 중요했던 것은 상위 5대 계열사였고 계열사 간에 보증채무를 서 놓은 것을 끊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했다. "자체적으로 버릴 회사는 버리고, 빅딜을 통해 삼성자동차와 LG반도체 등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워크아웃 제도가 등장한 배경은 당시 법정관리와 화의, 파산 등의 제도로는 이들 기업의 구조조정을 한번에 처리하기 어려웠던 데서 비롯했다. 나 대표는 "법정관리가 있었지만 일시에 가면 법원에서 처리도 못할 뿐더러 은행도 대출에 대한 자산건전성 분류에서 부실자산이 급격히 늘어나 망가지게 되는 상황이었다"며 "이를 해결하고 기업을 살리기 위해 기업한테 직접 돈을 줘야 하느냐 고민하다가 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주고, 금융기관을 통해서 구조조정을 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워크아웃 기업에 대한 채권은 자산건전성 분류에서 '요주의'를 적용했다고 그는 말했다. 부실여신의 중요 지표인 '고정 이하 여신'의 비율을 낮추어 준 것이다.

그는 "지나고 나서 보면 우리도 일종의 분식(粉飾)을 한 것"이라며 "당시 워크아웃 기업들은 다 규모가 크고 시장 지배력이 있어서 재무적인 부분을 도와주면 살아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나 대표는 "은행들이 대출을 해준 원죄가 있고, 기업을 둘러싼 이해 관계자 중 가장 정보가 많았던 상황"이었다며 "당시 성공률은 70%가 넘었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워크아웃 성공사례가 지금은 더 나오기 쉽지 않다고 그는 지적했다. "과거에는 다 채권이 물려 있으니까 채권단 간 협조가 잘 됐고, 대상 기업이 시장 지배력이 있어 가능성이 높았는데 지금은 다르다"고 했다. "금융위기 후 기업의 채권 중 1금융권 여신 비율이 줄어들면서 동업자 정신이 사라지고, 이제 주채권은행이 아니면 다른 은행들은 다 안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외환위기는 세계 경제 대비 한국 경제가 특히 나빠진 상황이었으나, 금융위기나 현재 상황은 한국 경제만 나쁜 것이 아니어서 기업에 대한 지원이 결과를 낳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나 대표는 지목했다. 또 현재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기업들의 사정을 보면 시장 지배력이 없고, 산업 전반이 부진한 경우가 많아 도움을 줘도 회복이 쉽지 않은 경우가 늘었다고 했다. 그는 "기업 구조조정이 성공하려면 재료(기업)가 좋아야 하는 것"이라며 "그래야 맛있는 음식이 되고, 보기도 좋고 하는데 지금은 모양을 낼 순 있지만 옛날 같은 맛이 안 나는 셈"이라고 비유했다.


(왼쪽은 나종선 오퍼스PE 운영부문 대표, 오른쪽은 김정호 대표)

나 대표는 현재 상황에 필요한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 "법정관리의 역할이 좀 더 커져야 한다"고 했다. 그는 "법정관리는 일단 채권 채무 권리관계를 깨끗이 하는 장점이 있다"며 "법정관리에 다양한 기능이 추가된 만큼 신규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할 수 있고, 이왕 신규자금을 준다면 권리관계가 깨끗해진 뒤에 주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부분에서 "(법정관리 기업에 대해) 사모펀드가 신규자금을 투자하는 역할을 점점 더 많이 맡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오퍼스PE를 새로운 활동무대로 선택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작년부터 외부 용역을 통해 종전 워크아웃 및 법정관리 제도를 손질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기업 전반에 자금 지원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시국이 시국인 만큼 필요성이 있으면 소신있게 해야 한다"면서도 "옥석가리기가 없이 그냥 무작정 돈을 주는 것은 곤란하다"고 했다. "회생의 가능성이 있느냐, 어려워진 원인이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것이냐 아니면 오래 전부터 어려웠던 상황인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특히 "정부가 예전에 워크아웃 제도를 만들었듯이 법정관리를 갔을 때 기존 여신이나 신규자금에 대한 규칙을 다소 바꿔야 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도 법정관리 기업에 대한 채권은 여신 건전성 분류에서 워크아웃보다 더 낮은 등급을 적용받는다. 일반인들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를 기업이 '파산했다'와 비슷한 느낌으로 받아들인다. 법정관리 기업의 성공 사례를 늘려서 이런 인식을 해소해야 하고, 이를 위한 정부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기업이 살 수 있느냐는 전제조건을 충족한다면, 그 방식은 훨씬 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는 강조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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