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이스탄불 이스탄불', 감옥 갇힌 네 男子의 '천일야화'

입력 2020-05-13 17:49   수정 2020-05-14 03:14

터키 이스탄불 지하감옥, 묘지보다 더 깊고 음습한 공간에 네 명의 남자가 갇혀 있다. 병든 도시를 구하겠다며 혁명집단에 들어간 의대생 아들 대신 감옥에 온 의사, 혁명운동을 하다 끌려온 19세 대학생, 고통을 스승으로 여기는 이발사 카모, 이스탄불을 찬미하는 노인 퀴헤일란이다. 칼날같은 추위가 살을 찌르는 초겨울에 가로 1m, 세로 2m밖에 되지 않는 좁은 감방에서 지내는 이들 중 한 명이 말한다. “우리는 고통의 손아귀 안에 있어. 다른 사람을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아. 그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자고. 이 안에서 우리는 가장 순수한 형태의 인간, 고통을 당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

오르한 파묵 이후 터키가 배출한 가장 독창적인 소설가로 평가받는 부르한 쇤메즈의 세 번째 장편 《이스탄불 이스탄불》(황소자리)은 나이도, 직업도, 성향도 다른 네 남자가 좁은 감방에 함께 갇히는 상황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고문의 두려움을 잊기 위해 끊임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기발한 수완으로 강간을 모면하는 수녀, 사람의 영혼을 가진 늑대, 흰고래를 찾아 평생 먼 바다를 떠돌다 패배한 늙은 어부 등 천일야화처럼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현실의 두려움을 이겨내고 각자의 상처를 치유한다.

이런 설정은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터키 쿠르드인 마을에서 자란 그는 인권 변호사로 활동 중 정치적 이유로 고문당한 뒤 영국으로 망명했다. 자신의 투옥 경험을 투영했음에도 소설은 암울한 현실을 잊기 위한 상상들을 경쾌한 문장으로 풀어내며 다채로운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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