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兆 들인 국산헬기 '외로운 싸움'…정부 입찰 때마다 '문전박대' 신세

입력 2020-05-18 17:28   수정 2020-05-19 00:50

정부 자금을 포함해 총 1조3000억원의 대규모 개발비가 투입된 국산 헬기를 정작 정부가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역 소방본부와 산림청 등 일부 기관들이 관용 헬기를 구입하면서 국내 업체는 입찰에 참여조차 할 수 없도록 기준을 만들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정부가 국내 기업 살리기에 나서고 있는 상황과는 배치된다는 지적이다.

관용 국산 헬기 비중 15.9% 불과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소방·산림·경찰청 등 5개 기관에서 운영하고 있는 120대의 관용 헬기 가운데 국산 헬기는 13대로, 국산 비중은 10.8%에 불과하다. 군대에서 쓰는 군용 헬기까지 합해도 이 비율은 15.9%에 그친다.

헬기를 자체 개발한 러시아(자국산 비중 99.7%) 프랑스(97.2%) 미국(92.5%) 중국(59.1%) 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경찰은 그나마 8대의 국산 헬기를 운영하고 있지만, 해경(2대) 소방(1대) 산림청(1대) 등은 구색 맞추기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기관은 헬기를 발주하면서 국산 헬기 제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입찰하지 못하도록 기준을 만들고 있다. 각 지역 소방본부가 항속거리(연료를 소진할 때까지 갈 수 있는 거리)에 대한 입찰 기준(700㎞ 이상)을 설정하면서 KAI가 생산한 수리온 헬기 성능(680㎞)보다 소폭 높게 잡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국산 헬기도 전국 어느 지역에서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항속거리를 확보하고 있다”며 “불과 20㎞ 차이로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기준을 설정한 것 자체가 외국산 헬기를 사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제한으로 국산 헬기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강원소방본부를 비롯해 서울, 부산, 전남소방본부가 실시한 입찰에서 배제됐다. 2013년 이후 중앙119구조본부 및 15개 시·도 소방본부와 도입 계약을 맺은 소방 헬기 10대 중 국산 헬기(수리온)는 1대(제주소방본부)에 불과하다. 대신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와 미국 에어버스 등 외국산 헬기가 이 자리를 차지했다.

서류 절차를 까다롭게 하기도 한다. 예컨대 올해 헬기 교체가 예상되는 한 광역지방자치단체 소방본부는 소방 헬기 구매 사전 규격으로 국토교통부의 항공안전법을 적용한 형식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용을 기본으로 설계·제작된 국산 헬기(수리온)는 이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 방위사업청의 형식인증 증명서로 우회할 수 있으나, 이에 대한 인정 여부는 소방본부 재량에 달렸다.

한국항공우주학회장을 지낸 조진수 한양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시·도 소방본부 주장대로라면 군과 경찰은 안전 검증이 덜된 헬기를 도입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육군(무사고 1만5000시간)과 경찰(5000시간)은 사고 없이 국산 헬기(수리온)를 쓰고 있다.

외산 헬기 유지비 세 배 더 들어

헬기의 대당 가격은 220억~250억원 안팎으로 큰 차이가 없는 반면 외국산 헬기를 유지하는 비용은 국산보다 세 배가량 비싼 것으로 알려졌다. 헬기 수명은 통상 20~25년인데, 외국 헬기 제조사들은 판매 가격을 낮추는 대신 부품 공급과 유지보수 비용을 올리는 방식으로 영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안영수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자체들이 서로 다른 외국산 헬기를 사면서 국내에서 운용되는 소방 헬기 종류만 12개나 된다”며 “세금을 아끼려면 미국과 프랑스 등처럼 기종 단순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헬기 제조 분야를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진흥협회는 올해 민항기 기체구조물 사업의 국내 생산액이 지난해보다 7억달러 줄어든 53억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산 헬기 관련 협력 업체는 300여 개에 달한다. 헬기 10대 제작 시 1500개의 일자리가 생긴다.

김경수 경남지사는 이날 시·도지사협의회에 참석해 “경남 사천에서 생산하는 ‘수리온’이 최소한 입찰에는 참여할 수 있도록 해 공정한 경쟁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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