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색채로 담아낸 꿈과 사랑

입력 2020-05-26 17:00   수정 2020-05-27 00:16


삶이 힘들어도 기댈 언덕 하나쯤 있으면 견딜 만한 법이다. 화가 김경희 씨(72)에겐 그림이 그런 의지처였다. 건국대 설립자인 상허(常虛) 유석창 선생의 맏며느리가 될 땐 “결혼생활 중에도 그림은 그릴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결혼 8년째 되던 해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뒤에는 미국으로 그림 유학을 떠났던 그였다. 2017년까지 17년 동안 건국대 이사장으로 일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고, 퇴임 후엔 더욱 열정적으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서울 소공로 금산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씨의 개인전 ‘나의 꿈, 나의 사랑(MY DREAM, MY LOVE)’은 그런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유화 대작 ‘축제의 날’ ‘내 마음의 노래’ ‘니스의 기억’과 신작 ‘어느 가을밤’을 비롯해 유화와 수채화 40여 점을 걸었다.

김씨는 화사하고 환상적인 색채와 빠른 붓 터치로 삶의 원천인 사랑과 추억, 기다림 등을 형상화한다. 꽃과 풍경 등을 그린 정물과 풍경화에서 삶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이유다. 작품의 주된 색조를 이루는 빨강과 녹색의 강렬한 원색 조합은 고뇌와 열정이 넘치는 작가의 내면 풍경이기도 하다. 화병에 담긴 붉은 장미가 화면 전체를 여백 없이 가득 채우기도 하고(행복한 날#1, 2), 한 잔의 와인과 함께 사색에 잠기기도 한다(어느 가을 밤).

‘남해 마을’ ‘아드리아 해변’ ‘슬로베니아 호숫가’처럼 풍경화에서도 거의 여백을 두지 않는 것도 김씨의 독특한 화풍이다. ‘축제의 날’ ‘내 마음의 노래#2’ 같은 작품에선 원근법도 잠시 유보한다. 대신 여러 요소를 콜라주하듯이 배치해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내 마음의 노래#2’에는 병에 꽂힌 화사한 꽃과 스케치하듯 그린 기타·첼로 등의 악기, ‘MOZART’라고 쓰인 악보, 화면 상단의 먼 풍경과 함께 나신의 여인이 웅크린 채 앉아 있다.

화려한 색상, 거칠고 빠른 붓질은 화면에 역동성을 부여한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경쾌하면서도 힘차다. 열정이 담긴 이런 작업을 통해 그는 고통과 절망, 슬픔을 희망과 기쁨, 사랑으로 바꿔낸다. 김씨는 “나에게 캔버스는 봄이며 희망이고 환희의 공간”이라며 “40여 년 세월을 넘어 가슴에 쌓인 고통을 캔버스에 그려내면서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지만 4학년 때 국전에 입선할 정도로 일찍부터 화가로서 가능성을 보였던 김씨는 유화와 수채화를 넘나들며 작업한다. 2011년부터는 한국수채화작가회 회장도 맡고 있다. 전시는 내달 5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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