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의 문화살롱] '나라 구한 나무'와 '부자 바위'

입력 2020-05-29 17:19   수정 2020-05-30 02:12

수령 600년에 이르는 느티나무 ‘현고수(懸鼓樹·북을 매단 나무)’와 남강 정암나루 물속에 세 개의 발을 딛고 서 있는 솥바위(鼎巖·정암). 이 둘은 경남 의령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의령의 인문지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의병장 곽재우와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이곳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찾은 건 현고수다. 유곡면 세간리의 곽재우 생가터 옆에 있는 이 나무는 오랜 풍파 속에 허리가 심하게 휘었다. 1592년 음력 4월 22일, 임진왜란 발발 1주일 만에 곽재우는 이 느티나무 가지에 큰 북을 매달았다. ‘적을 토벌해 나라를 구하자’는 토적구국(討敵救國)의 기치를 걸고 북을 치며 전국 최초로 의병을 모았다.

잇단 승리…공은 부하들에게

첫날 노비 10명으로 시작한 의병은 이튿날 50여 명, 곧 이어 2000명까지 불어났다. 관군이 거듭 패전하는 사이 그는 5월 4일과 6일, 왜선 14척을 상대로 첫 승을 거뒀다. 이순신의 옥포해전(5월 7일)보다 앞선 최초의 승전이었다.

이후 벌어진 ‘정암진 전투’에서도 크게 승리했다. 붉은 옷(紅衣)을 입고 달리는 그를 본 왜군은 ‘홍의장군’이라는 말만 들어도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로써 전라도로 진출하려는 왜군을 막고 호남 곡창지대를 온전히 지켰다.

그는 큰 전공을 세우고도 자랑하지 않았다. 이를 높이 산 비변사의 건의로 통정대부와 상주목사, 진주목사로 임명됐다. 한때 역모 누명을 썼다가 풀려난 뒤 정유재란 때까지 왜적과 싸웠다.

그는 치밀한 사전 정찰과 민첩한 매복, 고도의 심리전술로 전투를 이끌었다. 공은 부하들에게 돌렸다. 뛰어난 지략과 신의·화합을 중시하는 그의 용인술은 잇단 승전의 원동력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 공신에 책봉되지 못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전 재산을 의병 활동에 다 쓰고 말년에는 솔잎만 먹을 정도로 궁핍했다. 1617년 65세에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남긴 것은 단벌옷과 거문고, 낚싯배 한 척뿐이었다.

곽재우의 구국정신은 300여 년 뒤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안희제 가문으로 이어졌다. 세간리 인근 입산마을에서 태어난 안희제는 곽재우의 휘하 장수 안기종의 후손이다. 그는 항일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하고, 부산에 백산상회를 세워 독립운동 자금을 댔다. 또 “인재 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며 많은 학교를 세웠다. 안타깝게도 광복 2년 전 일경에 체포돼 고문 후유증으로 병사했다.

정암나루 솥바위는 세간리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부자 바위’라는 별칭의 이 바위에는 예부터 “세 개의 솥다리 방향 20리(8㎞) 이내에 큰 부자가 난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이곳 북쪽 정곡면에 삼성 창업자 이병철 생가가 있다. 남쪽 진주 지수면에는 LG 창업자 구인회, 동남쪽 함안 군북면에는 효성 창업자 조홍제 생가가 있다. 세 사람은 진주 지수초등학교 동문이기도 하다.

이들은 창업 당대에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그 바탕에는 사람을 중시하는 인재제일의 경영철학이 깔려 있다.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일생의 80%는 사람을 뽑고 키우는 데 보냈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때 죽음 문턱에서 살아난 그는 ‘기업을 일으켜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창업이념으로 삼았다.

망국의 벼랑 끝에서 나라를 구하고 지키는 것과 산업 불모지에서 사업을 일궈 국부를 창출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의 연대기를 뛰어넘는 일이다. 그 주역은 역시 사람이다.

의령군 용덕면 출신인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창업자는 전 재산의 97%로 1조원에 달하는 장학재단을 만들었다. 노벨상보다 상금이 많은 75억원 규모의 ‘세계관정과학상’도 제정했다. 이곳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할 때부터 가난한 학생들을 도왔던 그는 늘 “돈이 아니라 사람이 열쇠”라고 강조했다.

"주변 20리에서 큰 부자 난다"

최근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송마전자와 보생제화를 경영하는 김종성 대표가 모교인 대의초등학교 출신 대학 신입생 전원에게 장학금을 주는 ‘송곡장학금’으로 그 뒤를 잇고 있다.

모레(6월 1일, 음력 4월 22일)는 곽재우 장군이 첫 의병을 일으킨 날을 기념하는 ‘의병의 날’이다. 이병철 회장의 호를 딴 호암상 시상 30주년이기도 하다. 올해는 감염병 여파로 시상식이 열리지 않지만, 그의 생가와 솥바위를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는다. 곽재우 생가와 현고수 앞에도 사람이 붐빈다.

숱한 전란을 겪은 세계 최빈국이 7대 무역대국으로 성장한 저력은 토적구국과 사업보국 정신에서 나왔다. 그 지난한 역사가 한 뿌리에서 싹텄으니, 가지를 살찌우고 잎을 풍성하게 하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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