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E1채리티오픈 최종라운드 16번홀(파5). 이소영(23)의 클럽 끝을 떠난 세번째 샷이 홀을 긁고 나왔다. 홀까지 30cm도 안되는 거리. 버디였다. 그러자 세 홀 전 '벙커샷 이글'로 추격해 온 '슈퍼 루키' 유해란(19)이 흔들렸다. 넣지 못하면 안된다는 압박감이 역으로 유해란을 짓눌렀다. 2m가 안되는 퍼트. 유해란은 결국 이를 놓쳤다. 이소영의 우승이었다.
이소영은 31일 경기 이천 사우스스프링스CC(파72·6415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쳤다. 최종합계 17언더파 271타로 우승을 차지했다. 나흘 간 한 번도 선두 자리를 내주지 않은 시즌 첫 '와이어투와이어' 우승을 완성했다. 15언더파 273타를 친 유해란을 2타 차로 따돌렸고, 총상금 8억원 중 우승상금 1억6000만원을 가져갔다. 시즌 첫 승, 2018년 9월 이후 20개월만에 나온 개인통산 5승이다. 이 우승으로 대상포인트 1위(134점)로 올라섰다. 상금순위에서도 2억5370만원을 벌어 박현경(2억2602만원·20)을 밀어내고 1위가 됐다.
○10일간의 지옥 훈련, 20개월만에 5승째
이소영은 어렵다는 국가대표에서도 '에이스' 출신이다. '핫식스' 이정은(24), '대세' 최혜진(21)과도 한 때 태극마크를 달고 함께 뛰었다. 이정은과 KLPGA투어에는 같이 데뷔했다.
쟁쟁한 경쟁자들 속에서도 성실함과 꾸준함을 앞세워 빛났다. 주변 사람들은 "(이)소영이가 독기가 있다"고 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6~7km를 뛰고, 장소가 마땅치 않으면 러닝머신에서 1시간을 꼭 뛴다. 이소영은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 와 딱히 힘든 것을 모르겠다"고 했다.
남들이 끊어가는 파5홀은 틈만 나면 투온을 노릴 정도로 승부욕도 강하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는 우승 없이 준우승만 세 번했다. 상금 순위 10위에 들었을 정도로 꾸준했는데 우승과 연이 없었다. 롯데 골프단 관계자는 "이소영 선수가 워낙 내색을 안하는 선수지만 승부욕이 정말 강한 선수"라며 "지난 시즌이 끝나고 절치부심 했을 것"이라고 했다.
소속된 롯데골프단 합숙훈련에선 지옥 훈련을 자처했다. 지난 4월 제주도에서 진행한 훈련에선 깃대가 꺾일 정도의 강풍이 불었는데, 열흘 중 9일을 필드로 나가 라운드를 했을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오전에는 트레이닝과 쇼트게임을 가다듬고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샷 점검을 했다. "아침 7시 저녁 9시까지 훈련 스케줄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소화했다"는 게 관계자의 말이다. 이소영은 "(준우승에 그쳐) 답답함이 없지 않아 있었다"며 "어려운 시기에 우승하게 돼 여러모로 뜻깊다"고 했다.
○'슈퍼루키' 유해란, 신인상 경쟁 선두로
최종라운드에서 1타 차 선두로 출발한 이소영은 경기 내내 유해란의 거센 추격을 이겨내야 했다. 6번홀(파5)까지 파 행진을 이어 갔는데, 같은 조에서 2타 뒤진 채 시작한 유해란이 3번홀(파5) 버디로 턱 밑까지 추격해왔다. 이소영은 7번홀(파4)에서 이날 첫 버디로 응수했다.
13번홀(파4)도 위기였다. 이소영은 약 270야드를 날려 '원 온'에 성공했다. 그런데 벙커에 티샷을 빠뜨린 유해란이 두번째 샷을 '샷 이글'로 연결했다. 이소영은 투 퍼트를 해 버디에 만족했다. 다시 1타 차 승부. 하지만 이소영은 16번홀에서 세 번째 샷을 홀 옆에 붙이며 유해란을 따돌렸다. 16번홀(파5)에선 1m가 안되는 거리에 공을 붙여 '쐐기 버디'로 승부를 결정지었다.
경기 막판까지 우승 경쟁을 한 유해란은 시즌 첫 승 기회는 놓쳤으나 신인상포인트 1위로 올라섰다. 13번홀 이글 후 남은 다섯 홀에서 타수를 줄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313점을 얻어 조혜림(2위·301점)에 12점 앞선 선두다.
2년 차 임희정(20)이 이날 1타를 줄여 최종합계 12언더파 공동 3위에 올랐다. 1타 차 2위로 출발한 최예림(21)은 이날 2타를 잃어 합계 11언더파 5위에 머물렀다. 최혜진은 9언더파 공동 10위에 이름을 올렸다. '해외파' 중에선 이정은이 7언더파 공동 21위로 가장 좋은 성적을 적어냈다.
한편 KLPGA투어는 이날 남은 시즌 상금 요율 및 컷오프 인원 조정안을 발표했다. 이번 조정안으로 KLPGA는 우승상금을 총상금의 18%(기존 20%)로 낮추고 커트 통과 인원도 기존보다 많게는 20명 늘리기로 했다.
이천=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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