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이땅의 모든 풀꽃들에게

입력 2020-06-02 17:53   수정 2020-06-03 00:08

잡초와 화초는 다 같이 풀이다. 생명체를 동물과 식물로 나누고 다시 식물을 둘로 나누면 풀과 나무가 된다. 이때 나무가 아닌 식물이 모두 풀이다. 그런데 인간이 자기들의 필요나 주관에 따라 풀을 잡초와 화초로 나눴다. 거기에 하나 더 구분을 둔다면 곡식인데 이 또한 인간의 필요에 따른 것이다.

곡식이나 화초에 비해 잡초는 천하고 가치가 낮아 인간에게 선택받지 못한다. 버리고 멀리하고 더구나 가꾸려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잡초를 잡초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풀이라고 말하고 싶고, 거기에 피는 꽃을 풀꽃이라 부르고 싶다. 풀꽃은 구체적인 어떤 꽃을 말하지 않는다. 나무가 아니라 풀에 피는 모든 꽃이 풀꽃이다.

풀꽃. 발음도 좋다. 말을 하는 나의 입이 향기로운 것 같고 나 자신조차 풀꽃을 닮아 싱싱해지는 느낌이다. 얼마나 좋은가! 풀꽃. 아름답고 건강한 생명체다. 우리도 마땅히 풀꽃을 닮아서 아름답고 건강한 생명체가 될 필요가 있다. 풀꽃. 어울려 사는 목숨이다. 평화로운 나라의 동포들이다. 마땅히 우리도 풀꽃처럼 어울려 살기를 소망해야 하고 평화롭기를 꿈꾸어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풀꽃은 인간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친근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그냥 마이너라고만 생각된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결코 거기에 머물지 않는다. 풀꽃처럼 검박한 존재가 없다. 풀꽃처럼 강인한 존재가 없다. 풀꽃처럼 적응을 잘하는 생명체가 없다. 풀꽃처럼 정직하고 선한 목숨이 없다.

생각해 본다. 내가 살아오면서 사람들에게 풀꽃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아니 잡초로 대접받지 않았을까. 그랬을지도 모른다. 잡초란 실상 소수파를 지칭하기도 한다. 이단아를 말하기도 한다. 잔디밭에 꽃이 자라면 그것이 잡초이고 꽃밭에 곡식이 자라면 그 또한 잡초다. 그처럼 나도 곡식 밭에 난 하나의 꽃이 아니었을까.

그렇다 해도 좋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비록 잡초일망정 나 스스로는 풀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다른 이들에겐 내가 하찮은 풀꽃으로 보였겠지만 나 자신은 나를 소중한 꽃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아니, 꽃이 되려고 애쓰면서 살아왔다. 그것이 길이다. 그것이 나의 길이고 또 너의 길이다.

혹시나 오늘날 힘든 젊은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자신이 마이너라 생각하는가? 패배자라고, 낙오자라고 여겨지는가? 부디 그렇게 생각하지 말기를 부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할수록 자기만 손해다. 비록 조금 늦고 한두 번 실패했다 쳐도 내가 꽃이라고 생각해 보자. 언젠가는 성공하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 보자. 부디 그렇게 되기를 꿈꾸어 보자. 오늘은 아니지만 분명 내일은 그럴 것이라고 다짐해 보자.

어느 순간엔가 바뀌는 자기와 자기의 처지를 볼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나만 해도 70세가 넘어서야 비로소 독자들에게 선택받는 시인이 되었다. 얼마나 좋은가! 늙은 사람의 명예가 정작 명예다. 이 땅의 모든 풀꽃들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가자! 아름다운 나라, 꿈꾸는 나라로 우리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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