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판매 제한…"은행서 팔 상품이 없어요"

입력 2020-06-05 17:34   수정 2020-06-06 00:10


직장인 A씨는 얼마 전 방카슈랑스 상품(은행에서 판매하는 보험)에 가입하려고 은행을 찾았다가 거절당했다. 은행마다 주어지는 특정 회사 상품 판매 비율(25%)을 다 채웠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A씨는 “방카슈랑스 담당자가 자리를 비워 당일 가입이 어렵다고 한 적도 있다”며 “가입을 원한다는데도 못하게 하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제로금리’에 들어선 예·적금의 대안으로 보험 상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은행권의 해묵은 방카슈랑스 규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상품 가입을 원하는 소비자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다.

방카슈랑스 규제는 복합적이다. 우선 판매할 수 있는 상품이 제한적이다. 종신보험과 자동차보험은 아예 취급할 수 없다. 보험사에서 월 1만원이면 가입할 수 있는 운전자보험도 은행에서는 월 10만~20만원짜리 저축성 보험 형태로 변형해 팔아야 한다.

많이 팔 수도 없다. 아무리 인기 있더라도 일정 비율을 채우면 추가 판매가 금지된다. 영업에도 족쇄가 채워져 있다. 보험 판매 자격을 갖춘 프라이빗뱅커(PB)들이 모여 있는 영업점에서도 직접판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두 명으로 제한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방카슈랑스 상품에 가입할 때 불편을 겪거나 장시간 대기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고객이 원하는데도 다른 업계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판매를 가로막는 건 지나치다”고 말했다.<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margin:25px 0; border:1px solid #c3c3c3" />"은행 지점 2명만 보험 팔아라"…'방카' 도입 18년간 규제사슬
과도한 판매 제한…은행, 규제 역차별에 운다


은행을 통한 보험 상품 가입 수요가 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두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가 떨어지면서 예·적금 금리는 연 0%대로 추락했다.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주거나 절세할 수 있는 방카슈랑스 상품으로 소비자가 눈을 돌리는 이유다. 해묵은 규제를 완화해 방카슈랑스 시장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주장이다.

인기 상품도 25% 채우면 판매 못 해

소비자의 선택권을 좁히는 대표적인 규제가 ‘25%룰’로 불리는 상품 비율 규제다. 은행마다 특정 보험사(생보·손보 각각)의 판매 금액이 연간 신규 판매액의 25%를 넘을 수 없다는 규정이다. 한 은행 방카슈랑스 담당자는 “요즘 같은 저금리 시기에는 금리가 높은 상품이 나오면 금방 입소문을 타기 때문에 순식간에 25%를 채운다”며 “판매가 중지되고 나면 소비자에게 혜택이 더 낮은 상품을 안내해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손해보험 쪽은 이런 규제를 지키기가 더 힘들다. 방카슈랑스 채널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는 회사 수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대신 규모가 큰 보험대리점(GA) 채널에 판매를 집중하는 곳이 많아졌다.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손해보험, 메리츠화재, 에이스손해보험 등이 최근 잇따라 방카슈랑스 판매를 중단했다. 현재 대형은행의 방카슈랑스 채널을 이용하는 손보사는 6~7곳에 불과하다.

영업점 내 판매 인원 제한도 불편을 야기하고 있다. 영업점 한 곳당 방카슈랑스 판매인은 두 명까지만 둘 수 있다. 이 때문에 영업점마다 당번제로 돌아가면서 방카슈랑스 담당자를 두는 게 보통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방카슈랑스 취급 자격증이 있는 사람도 당번이 아닐 때는 판매할 수 없으니 고객들이 창구를 옮겨다니거나 오랫동안 대기해야 한다”며 “담당자가 휴가를 가거나 갑자기 인사가 나면 상품을 팔지 못하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아웃바운드(외부) 영업 금지 조항도 오래된 규제 중 하나다. 은행 내부의 지정된 장소에서만 방카슈랑스를 판매할 수 있다는 게 골자다. 전화, 우편물을 통해 상품을 안내하는 것도 불법이다. 업무 시간에 자리를 비우기 힘든 기업 고객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는 게 은행권 얘기다.

“불완전판매 줄이는 데도 도움”

소비자들의 방카슈랑스 선호도는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다. 4대 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의 방카슈랑스 가입액(월납 기준)은 올 들어 4월까지 88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698억원) 대비 26.5% 늘어난 수치다. 한 대형은행 영업점 직원은 “예·적금 금리가 갈수록 떨어지면서 연 2~3%대 금리를 주거나 10년 유지 시 비과세 혜택을 주는 저축성 보험 상품에 대한 문의가 많아졌다”며 “과거에는 적금 만기가 된 돈으로 정기예금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은 보험상품으로 갈아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방카슈랑스 시장 규제는 17년 전에 머물러 있다. 2003년 도입할 당시만 해도 단계별로 규제를 철폐할 예정이었지만 보험업계 반발에 막혔다. 설계사들이 생계를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2008년 4월 종신보험과 자동차보험, 치명적 질병(CI) 보험까지 판매군을 확대하기로 했던 계획은 시행 직전 철회됐다.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은행권 주장이다. 방카슈랑스 도입 이후에도 설계사 시장은 성장세를 이어왔다. 2003년 25만7000명이었던 설계사(보험사·대리점 소속 포함) 수는 지난해 말 40만9000명으로 불어났다. 시중은행 방카슈랑스 담당자는 “금융 소비자의 편의를 고려해 지금이라도 규제를 단계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며 “방카슈랑스 채널을 활성화하는 것이 실적 악화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 보험사에도 도움을 주는 길”이라고 했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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