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사 암흑기…유가 올라도 정제마진 마이너스

입력 2020-06-14 17:16   수정 2020-06-15 00:57

정유사들의 수익 지표인 정제마진이 석 달째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역대 최장기 마이너스 행진이다. 업계의 공포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 선을 회복했지만 정제마진은 반등할 줄 모른다는 데 있다. 국제 유가와 연동하던 공식마저 깨진 것이다. 정유사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오일쇼크 때보다 더 큰 위기가 왔다”고 우려하고 있다.


“석유 수요 정점 지났다”

14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6월 첫째주 평균 싱가포르 정제마진은 배럴당 -1.6달러로 집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3월 셋째주 마이너스에 들어간 이후 12주 연속이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뺀 것이다. 손익분기점 4~5달러를 유지해야 채산성을 맞출 수 있는데 지금은 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가 난다는 의미다.

통상 정제마진은 국제 유가와 연동하는데 올해는 이 공식마저 깨졌다. 국제 유가 선물가격은 지난 4월 사상 초유의 마이너스를 기록한 뒤 산유국들의 감산 기대로 배럴당 30달러 선을 회복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와 영국 북해 브렌트유는 이달 초 한때 배럴당 40달러 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유사 기대와 달리 정제마진은 여전히 마이너스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유 선박유 등의 수요가 급감한 영향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정제마진이 하루 단위로 마이너스였던 적은 있었지만 주간으로는 플러스를 유지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과거 위기 때 나타났던 ‘휘발유 가격 하락→수요 증가→석유제품 가격 상승→정제마진 개선’이란 흐름이 실종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올해 세계 원유 수요는 작년보다 하루평균 860만 배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140만 배럴)는 물론 1980~1983년 2차 오일쇼크(-630만 배럴) 때보다 감소폭이 크다.

시장의 우려는 내년에도 원유 수요 회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전기차 시대 도래, 언택트(비대면)의 일상화, 여행수요 감소 등으로 석유 사용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버나드 루니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원유 수요가 이미 정점을 찍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코로나19가 종식돼도 다시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화석연료 중심이던 에너지 시장의 근본적인 전환으로 정유사들의 위기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코로나19가 결정적 충격을 주긴 했지만 이미 정제마진은 최근 수년간 계속 악화해왔다. 2017년 평균 정제마진은 배럴당 7.1달러였지만 2018년 5.8달러, 2019년 3.7달러, 2020년 0.2달러로 지속적인 하락 추세다. 정유사 수익도 같이 줄었다. 에쓰오일의 영업이익은 2017년 1조3733억원, 2018년 6395억원, 2019년 4201억원으로 매년 급감하고 있다.

정유사 도미노 구조조정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는 지난 1분기 합산 영업적자 4조3775억원이라는 최악의 실적을 냈다. 국제 유가 급락으로 과거 비싼 값에 사 놓은 원유에 대한 재고평가 손실이 대거 발생한 데다 정제마진이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2분기에도 실적 개선을 장담할 수 없다. 최근 국제 유가 반등으로 재고평가손실은 줄겠지만 정제마진이 회복되지 않으면 실적 반등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3689억원)과 에쓰오일(-438억원)은 2분기에도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 실적 회복의 열쇠는 항공유 수요가 쥐고 있다”며 “항공 노선이 조금씩 재개되고 있지만 여객 회복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외 정유사들은 고통스러운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영국 BP와 미국 쉐브론은 각각 인력을 15% 감축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꿈의 직장’으로 불리던 에쓰오일은 올해 희망퇴직 제도를 도입한 뒤 매년 희망퇴직을 받기로 했다. 회사 관계자는 “승진 적체 해소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업계에선 불황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투자에 속도를 내며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분리막을 제조하는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의 기업공개(IPO)도 추진하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회사별로 구조조정 등 비용 절감과 사업 다각화 움직임이 올 한 해 내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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