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순간, 순간들…잿빛 도시에 전하는 위로와 공감

입력 2020-06-16 17:15   수정 2020-06-17 11:10


어둑한 거리, 홀로 불 켜진 가게 앞 플라스틱 의자에 등이 구부정한 남자가 앉아 있다. 그가 독백처럼 내뱉는다. “가게 문을 닫아야 하나.” 오늘 영업을 끝내고 문을 닫아야 할지, 아예 장사를 접어야 할지 두 가지로 읽히지만 본뜻은 후자에 가깝다. 회색 톤의 화면에 자영업자의 한숨과 짙은 고민이 묻어난다.

화가 오상열(41)은 이렇게 회색빛 도시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포착해 화면에 담아낸다. 퇴근 후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한방’을 노리며 로또 가게 앞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밤늦게 사무실에 홀로 남아 야근하는 직장인, 어깨를 늘어뜨린 채 골목길을 올라 집으로 향하는 사람, 식당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는 혼밥족….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17일부터 열리는 오상열 개인전 ‘삶의 순간, 순간들’에는 이런 도시인들의 다양한 삶을 담은 회화 작품 30여 점이 걸린다. 제주대와 성균관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오상열 작가는 선화랑이 매년 첫 기획전시로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을 소개하는 ‘예감전’의 2016년 멤버로 참여했다. 이후 아트페어, 신진작가 특별전 등으로 인연을 이어오다 선화랑에서는 처음 여는 개인전이다.

출품작은 크게 두 갈래다. 무채색으로 도시인의 일상과 애환, 삶의 모습을 담아낸 작품들과 파스텔 톤으로 그려낸 봄꽃의 향연에서 희망적인 미래를 이야기하는 ‘아름다운 날들’ 연작이다.

오 작가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타인의 삶에 공감하고, 또한 공감을 자아낸다. 그의 눈에 포착된 사람들은 다양하다. 샐러리맨, 학원으로 달려가는 학생, 막막함 가운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취업준비생, 불경기에 고투하는 자영업자…. 그림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제목부터가 공감을 이끈다.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재개발이 된다는데’ ‘월세 올려 달라는데’ ‘어디로 가지’….

그렇다고 걱정과 한숨과 애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옥탑방 앞에서 월세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두 손을 치켜들고 “야호, 합격이다!”를 외치는 사람도 있다. 포장마차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향해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겁니다”라고 위로하거나 “지난 일은 잊어버리세요”라고 토닥인다. 올해 그린 ‘아름다운 날들’ 연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더욱 위축되고 힘든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와 희망까지 선사한다.

군중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자신을 드러내기도 한다. 2016년작 ‘어디로 가지…’는 모두가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광장에서 홀로 발걸음을 멈춘 사람의 이야기다. 한쪽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무리에서 이탈해 등을 돌린 사람을 통해서는 ‘저게 재밌니’라며 몰개성의 시대를 꼬집는다. 광장의 군중이 모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스마트폰 세상’도 마찬가지다.
올해 작업한 '아름다운 날들' 연작은 파스텔 톤의 따뜻하고 화사한 꽃이 만발한 풍경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경제적·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된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미래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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