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뒷골목 '물개카페' 프릳츠, 삼성전자 전시장 된 이유

입력 2020-06-18 15:15   수정 2020-06-19 00:22


'갈매기 골목'으로 불리는 마포 가든호텔 뒷길. 오래된 음식점들 사이 1년 내내 붐비는 카페가 하나 있다. 길을 헤매던 사람도 빵 굽는 냄새에 먼저 이끌려 찾게 된다는 일명 '물개 카페', 프릳츠커피컴퍼니다.

2014년 문을 연 프릳츠는 독립 카페 중 처음으로 낡은 것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레트로 카페'의 원조로 불린다. 독특한 공간, 스페셜티커피, 맛있는 베이커리 메뉴가 어우러져 단숨에 2030이 열광하는 공간이 됐다.

3년도 채 버티기 어렵다는 커피 시장에서 프릳츠는 매년 성장하며 연매출 80억원의 카페 브랜드가 됐다. 점포는 마포 도화점, 종로 원서점, 양재점 등 3개로 늘었다. 전국 550곳의 카페는 프릳츠가 로스팅한 원두로 커피를 내린다. 월 16t의 원두를 볶는다.

프릳츠는 시작부터 달랐다. 6인의 공동 창업자가 모여 시작했다. '빵 천재' 허민수, 바리스타 챔피언 박근하, 로스터 김도현, 생두 바이어이자 커피 감별사 전경미, 바리스타 송성만과 생두 바이어 김병기. 각 분야 최고의 전문가가 모여 '빵과 커피가 맛있는 곳'을 만들었다.

6년 뒤 프릳츠는 '카페들의 카페'가 됐다. 창업 멤버 6인은 여전히 함께 한다. 이들은 △카페가 몰리는 핵심 상권이 아닌 곳에서 △스페셜티 커피의 특별함을 과시하지 않고도 △80명의 정규직 직원과 함께 성장을 이뤄나가는 새로운 실험의 성공 스토리를 써가고 있다. 프릳츠 도화점에서 김병기 대표(39)를 만났다.

마포 뒷골목, 물개의 탄생 스토리

프릳츠의 3개 매장은 공통점이 있다. 요즘 뜬다는 '핵심 상권'과는 거리가 멀다.

프릳츠가 매장을 낼 때 다른 카페들은 주로 가로수길, 광화문, 합정동, 연남동 등에 경쟁하듯 모였다. 1호점인 마포 도화점은 원래 갈비집이었던 곳을 개조한 곳. 지금도 주변에 이렇다 할 경쟁 카페는 없다.

김병기 대표는 "제대로 된 빵과 커피를 만드는 데 상권은 중요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만큼 최고의 완성품을 내놓을 자신이 있었다는 얘기다. 더 중요한 건 빵과 커피는 온도와 습도에 따라 품질이 좌우된다는 것.

"상권보다는 사계절 일정한 품질로 빵과 커피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중요했어요.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하면 매번 품질 관리 기준을 다시 잡아야 하니까요. 부동산(임대료) 문제 때문에 생존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곳을 찾아다니다 둥지를 튼 곳이 도화동이었습니다"

1호점인 마포 도화점은 물론 2호점인 양재점도 번화가와 거리가 먼 주택가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다. 원서점은 아라리오갤러리에서 좋은 조건으로 카페 자리를 내줬다.

아낀 임대료로 공간은 더 압도적으로 만들고, 브랜딩은 세심하게 다듬었다. 그래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상호는 '프릳츠'(fritz·고장난)로 지었다. 한글의 옛 표기법을 따를 수 있고 영어로도 읽기 쉬워 뜻은 따지지 않고 그냥 지었다고 한다. 핵심 캐릭터로는 '물개'를 선택했다. 프릳츠 안에는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한국의 자개장과 낡은 가구들이 놓여 있다. 야외에는 동해안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오색 파라솔과 플라스틱 의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서로 관계 없는 것, 낯선 것들을 고집했다"고 했다. 또 "가장 한국적인 것들의 아름다움을, 사람들과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삼성전자도 부러워하는 브랜드가 되다

물개가 간판이 된 이유도 비슷하다. 커피와 전혀 연관 없고 낯설지만, 반대로 독보적인 확대재생산이 가능한 캐릭터였다. 어디에도 없던 물개는 사람들의 뇌리에 금방 각인됐다.

프릳츠의 물개는 컵, 에코백, 문구류 등 각종 굿즈로 진화했다. 밀레니얼 세대들에겐 '팬덤'이 됐다. 요즘은 스타벅스의 인어 사이렌보다 프릳츠의 물개가 더 인기 있다. '뭘 만들어도 잘 팔리는' 캐릭터가 된 셈이다.

독보적인 캐릭터와 공간이 구축되자 크고 작은 기업들의 협업 요청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브랜딩팀은 프릳츠가 밀레니얼 세대를 어떻게 매혹시켰는 지 연구했다. 신제품 냉장고 '비스포크'의 전시장으로 프릳츠 카페를 택했고, 갤럭시 신제품을 내놓을 때 프릳츠와 협업한 굿즈를 내놨다.


사람에 투자하니, 사람이 몰렸다

김 대표는 "카페를 멋있게 만드는 건 쉽지만, 사랑받는 카페가 되는 건 어렵다"고 했다. 혼자 열심히 하는 건 쉽지만, 함께 일해 사회에 기여하는 기업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다고도 했다. 프릳츠에서 빵과 커피는 '굿 컴퍼니'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다.


창업자 6명은 프릳츠 구성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꿈꿨다. 직원들의 경제적 성취 없이 시간제 알바만을 유지해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봤다. 초기엔 업계 평균보다 임금을 30% 가량 더 주는 정책으로 다른 카페 사장님들에게 눈총을 받기도 했다.

그는 "작년에도 전 직원의 연봉을 7%가량 올려줬다"며 "인생의 시기마다 경제적 성취가 있어야 하고, 가족들과 평범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직원이 곧 좋은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릳츠는 다른 카페들이 '명절 대목'을 노릴 때도 전 매장 문을 닫는다. 직원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으면 결코 행복하게 손님을 맞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모든 직원에겐 결혼 수당, 상여금, 근속 수당 등을 준다. 아이 1명을 낳을 때마다 주는 보너스도 있다.


프릳츠는 '지속가능한 기술자' 양성소

프릳츠만의 직업교육도 있다. 6개월에 한 번은 전 점포가 문을 닫고 직원 80명이 한 자리에 모인다. 얼굴을 마주보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회사의 현황을 공유한다. '칭찬해 프로그램'으로 동료들 중 멋진 사람을 추천하기도 한다.

'가르치고 배우기'라는 주제의 '싱크프로그램'은 베이커리팀이 커피를 배우거나 커피팀이 사진 촬영기법을 배우는 등의 사내 '1일 클래스'다. 가르치는 사람(10만원)과 배우는 사람(3만원)에게 회사는 모두 돈을 지급한다. "모든 구성원은 훌륭한 기술자가 되어야 하고, 기술자가 되기 위해 잘 배워야 한다"는 게 김 대표의 얘기다.

그는 "각자의 직무 내용을 한 달에 한번 번갈아 가며 동료들에게 가르치는데 구성원 개인의 시간이 소중하고, 모두의 성장이 중요하기 때문에 배우는 이와 가르치는 사람 모두에게 참여금을 준다"고 했다.

혼자 사는 직원들에겐 집으로 '비타민 박스'를 보내 과일과 견과류 등을 챙겨준다. 서비스업의 고된 면을 알기 때문에 체력단련비와 함께 인근 상담센터에서 직원들이 '정기 정신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한다.

20대 직원이 많은 만큼 회사는 공유차를 운영해 필요한 사람이 미리 예약해서 회사 차를 마음껏 쓸 수 있게 했다.

김 대표는 "새로운 노동의 패러다임을 만들고 싶었다"며 "내가 가진 기술로 내 삶을 불안 없이 유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했다.

커피 잘 내리는 사람? 지각 안하는 사람이 더 좋다

프릳츠에서 일하는 건 힘들다. 일종의 '오픈 커피 바'형태여서 바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잠시라도 손님들의 시선을 피할 수가 없다.

김 대표는 "바리스타는 매일 무대에 서는 동시에 무대 뒤에 일도 함께 해내야 하는 직업"이라며 "커피 한 잔의 정점을 만드는 동시에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이라고 한다.

그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정직원이 되기 전 2개월의 수습 기간 동안 '직업인 교육'을 맡는다.

'여론과 의견', '언어감수성', '직급과 직책의 차이', '소통과 약속의 중요성', '자기객관화' 등을 주제로 조직 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업의 기본'에 대해 강의한다. 다른 카페와는 다른 공부를 할 수 있어서일까. 2014년 창업 멤버들은 아직도 대부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프릳츠에서 일할 땐 커피를 맛있게 만드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약속한 시간을 어기지 않는 거죠. 회사는 직원들의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직원들은 출근시간을 잘 지키는 게 기본이니까요."

김 대표가 생각하는 프릳츠의 가장 큰 자랑 '벽이 없는 것'. 프릳츠는 스페셜티 커피를 다루지만 콜드브루, 커피티백, 드립백, 인스턴트커피, 볶은 원두까지 '커피의 모든 것'을 만들고 판다.

프릳츠 카페에 앉아 있으면 머리가 희끗한 노년의 부부, 아이 손잡고 오는 젊은 부부, 데이트 하는 대학생, 직장인들, 외국인들까지 찾아오는 단골들의 경계도 없다.

"문턱을 낮추는 게 진짜 멋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좋은 카페, 좋은 공간이란 결국 손님이 만드는 것이니까요."
이토록 쉽고 친절한 스페셜티 커피라니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에 가면 원산지, 농장, 로스팅 방식과 유통 과정 등을 다소 복잡하게 써놓은 곳이 많다. 유명 카페라고 해서 가도 막상 '그들만의 언어'가 된 곳들이 다수다.

프릳츠는 그걸 경계했다. 간편하고 편안하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방식을 택했다.

바이어들은 매년 인도와 콜롬비아 등 커피 산지에 직접 가 계약을 해오고, 식품안전인증을 받은 로스팅 공장에서 고품질의 원두를 세심하게 블렌딩한다. 하지만 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커피 맛있게 마시는 법', '더 간편하게 즐기는 홈카페'만 이야기할 뿐이다. 대표 원두 블렌드의 이름도 '서울시네마' '잘 되어 가시나' '올드독' 등으로 은유적으로, 위트있게 지었다. 5월 노동절을 기념해 내놓은 한정판의 이름은 '영차영차'. 강배전한 커피 블렌드로 노동의 쓴맛과 단맛을 살렸다는 의미를 담아 화제를 모았다.

프릳츠의 인스타그램은 하나의 미디어가 되고 있다. '원두 보관법', '콜드브루 맛있게 즐기는 법'을 캐릭터와 이미지를 활용해 쉽게 설명한다. '이번달 프릳츠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리스트'도 공유한다.

원두 블렌드의 이름인 '잘 되어 가시나'를 큰 타이틀로 프릳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터뷰 시리즈도 싣고 있다.

제빵사, 바리스타, 디자이너까지 벌써 38명째 인터뷰가 올라왔다. 이 글들은 프릳츠를 찾는 사람들, 프릳츠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공유한다. 각자의 일에 몰두해 지나칠 수 있었던 바로 옆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매개다.

"우리는 어쩌면 가족들보다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눕니다. 함께하는 구성원이 그렇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프릳츠를 찾아주시는 손님들이 그렇습니다. 프릳츠에서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안부 묻기, 잘 되어 가시나."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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