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김정은이 두려워하는 '리비아 모델'은

입력 2020-06-19 10:55   수정 2020-09-16 00:03


존 볼턴 전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미 법무부가 “책 내용이 국가 안전보장을 위협하는 기밀 정보를 포함하고 있다”며 워싱턴 연방법원에 제소했으나 볼턴은 “트럼프에는 부끄러운 내용이지만 안보를 위협하는 정보가 없다”며 출간을 강행하고 있다. 볼턴이 정식 출간 직전 미 언론에 책의 주요 내용을 전달하면서 트럼프와의 갈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주(駐)유엔 미국대표부 대사를 역임했던 볼턴은 트럼프 행정부에서 2018년 4월부터 작년 9월까지 미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보좌관으로 일하다 ‘해고’ 됐던 인물이다. 메모광으로 잘 알려져 있다. 1년 반 동안 백악관 요직을 맡다 경질됐던 건 ‘북한에 대한 리비아식 모델 적용’ 여부를 놓고 트럼프와 갈등을 빚었던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와 볼턴은 서로 말 폭탄을 주고 받고 있다. 볼턴이 책에서 트럼프 및 그의 인사들을 향해 ‘panda-huggers’(중국에 우호적인 집단)이라고 비난하자, 트럼프는 볼턴을 ‘sick puppy’(정신병자·자기 토사물을 먹는 병든 강아지)라고 매도했다. 또 볼턴을 ‘warmonger’(전쟁광)이라고 묘사한 댄 스카비오 백악관 소셜미디어국장의 트윗을 리트윗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미친 볼튼이 방송에 나와 북한을 향해 ‘리비아 모델’ 적용을 살펴본다고 했을 때 다 망쳤다”(When Wacko John Bolton went on Deface the Nation and so stupidly said that he looked at the “Libyan Model” for North Korea, all hell broke out.)고 썼다.

이어 “나와 잘 지내던 김정은이 분통을 터뜨렸고 이는 당연한 일”이라며 “(리비아 모델을 언급한) 볼턴의 멍청한 주장이 북한과 미국 관계를 형편없이 후퇴시켰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볼튼에게) 도대체 무슨 생각이었느냐고 물어봤더니 답이 없었다. 그저 사과를 했다”며 “그게 볼턴 임기의 초기였는데 그때 해임했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볼턴이 북한에 대한 리비아식 모델을 처음 언급했던 건 2018년 6월 싱가포르에서 예정됐던 북미 정상회담 직전이었다.

리비아 모델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선(先)핵폐기, 후(後)보상’ 방식이 골자다.

미국은 2003년 리비아와의 양자 협상에서 핵무기 포기를 이끌어내고, 2년 뒤 경제적인 보상을 이행했으나 결국 리비아 독재 정권이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북한은 이 모델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표출해 왔다.

20여년 전까지만 해도 리비아의 핵 등 대량살상 무기(WMD)는 국제 사회의 큰 골칫거리였다.

1942년 리비아의 시르테주 수르트에서 태어난 무아마르 알 카다피는 27세의 젊은 장교(육군 중위)이던 1969년 육군 사관학교 동기 및 후배들과 쿠데타를 일으켜 왕정을 무너뜨렸다. 이후 아랍 민족주의를 주창하며 좌파 독재 정권을 수립했다. 2011년까지 42년간 리비아를 철권 통치하면서 자신의 아들 5명을 정·재계 요직에 앉혔다.

반미(反美)를 앞세워 미국과 적대 관계를 형성했고, 핵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북한처럼 미국으로부터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돼 원유 수출이 금지되는 등 경제 제재를 받았다. 1986년 미국의 리비아 폭격 이후 카다피는 자신의 거처를 계속 바꾸며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

‘리비아 모델’이 등장한 시기는 2003년 12월이다. 리비아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모든 대량살상 무기 포기 및 비핵화를 선언했다. 핵사찰도 수용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경제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카다피가 미 중앙정보국(CIA) 암살 대상 명단에 포함됐다는 언론 보도에 겁을 먹었다”는 해석도 나왔다.

미국은 이후 리비아와 단계적인 국교 정상화에 나섰고 경제 지원을 제공했다. 두 나라 간 국교가 정상화 된 시점은 2006년이다.

하지만 카다피의 말로는 비참했다. 발단은 2010년 12월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발생한 재스민 민주화 혁명(아랍의 봄)이었다. 23년간 장기 집권했던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에 반발해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고 주변국으로 확산됐다. 리비아에서도 카다피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빈발했다.

이듬해 2월 카다피 정권이 시위대를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발포에 나서자 유엔 안정보장이사회는 리바아에 대한 제재를 결정했다. 다국적군은 리비아군을 대상으로 공습을 감행했다. 리비아에서 내전까지 발발하자 카다피는 수도 트리폴리를 탈출해 야반도주했다. 2011년 10월 고향 시르테에서 반군에 발각돼 사살됐다.

이런 역사 때문에 가족 세습 체제인 북한 정권은 ‘리비아 모델’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보여왔다. 2018년 북미 정상회담의 판이 깨질 뻔했던 위기도 볼턴의 리비아 모델 언급이 발단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엔 리비아 모델을 적용하지 않고, 북한 체제를 유지하도록 해주겠다”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볼턴은 이후에도 리비아 모델을 적극 변호했다. 올 2월엔 한 미국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카다피의 핵 포기는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몰락을 보고 내린 전략적 결정”이라며 “카다피는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 저런 일이 발생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이 지난 30년 간 핵 포기의 증거를 한 조각도 보여주지 않았다”며 “믿을 만한 이유를 갖게 되기까지 북한이 어떤 약속을 준수할 것이라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선(先) 핵 포기를 기본으로 한 리비아식 모델을 북한에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는 지론을 고수한 것이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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