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아의 독서공감] 치부까지 가감없이 드러낸 처칠·버나드 쇼가 빛나는 이유

입력 2020-06-25 17:42   수정 2020-06-26 03:03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 유명 인사의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대신 써주는 작가를 일컫는다. 철저히 타인의 뒤에 숨어 필력을 발휘해 ‘고객의 일생’을 최대한 체계적이고도 아름답게 서술하는 게 고스트라이터의 일이다.

고스트라이터에게 자서전 업무를 맡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정치인이나 기업인, 연예인 등 사회적 거물급 인사다.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많은 성공담을 담고 싶어 한다.

이번에 나온 신간 두 권은 고스트라이터의 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쓴 자서전이다. 두 사람은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 영국에서 살았다. 한 명은 유명한 문인이고, 한 명은 걸출한 정치인이다.

《16편의 자화상》은 아일랜드의 작가이자 문학평론가인 조지 버나드 쇼가 생전 유일하게 남긴 자서전이다. 그는 1939년 전기 작가들을 위해 ‘쇼, 자신을 폭로하다’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썼고, 이후 한 차례 수정해 같은 제목으로 재발간했다. 자기 일상을 남들과 다를 바 없다고 밝히고, 더블린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의 끔찍함을 말한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는 묘비명으로 유명한 독설가답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조차 망설임 없이 자서전에 담긴 위선을 비꼰다. 또한 그 자신도 위선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우회적으로 시인한다. “모든 자서전은 거짓말이다. 무의식적 거짓말이 아니라 고의적인 거짓말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도 살아생전에 자기 자신에 대해 진실을, 그러니까 자신의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 관한 진실을 반드시 포함하게 되어 있는 그런 이야기를 할 만큼 나쁘지 않다. 또 어떤 사람도 자신에게 반대할 사람이 남지 않을 때까지 감추어 온 문서에서 후손에게 진실을 털어놓을 만큼 선하지 않다.”

《윈스턴 처칠, 나의 청춘》은 영국 총리를 지낸 윈스턴 처칠이 1930년 출간한 자서전이다.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제2차 세계대전》이 공적인 활동에 집중됐다면, 이 책은 공개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 자신의 ‘비극적 청년기’를 다룬다.

처칠은 명문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지만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학교에선 낙제생, 문제아로 찍혔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탁한 회색빛 상처’라고 표현했다. “선생님들은 온갖 방법으로 나를 공부시키려고 했지만 내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12년 동안 학교를 다녔지만 나로 하여금 라틴어 경구나 그리스어를 알파벳 이상 쓸 수 있도록 만든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3수 끝에 들어간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에야 처칠은 인생의 새로운 빛을 만난다. 군인이 되어 쿠바, 수단, 인도, 남아프리카 등지를 다니며 참전했다. 남아프리카에선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해 본국에서 전쟁 영웅이 됐다. 그 인기를 몰아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다. 그는 이 과정에 대해 “마침내 나는 이 끝없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다”고 적었다.

두 자서전이 진정 빛나는 이유는 자신의 치부를 가감 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잘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걷어낸 글엔 진실의 용기가 담겨 있다. 나는 과연 훗날 인생을 내 손으로 펜을 들고 돌아볼 수 있을까.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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