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과 구상 사이…色으로 남은 풍경의 기억

입력 2020-07-01 17:32   수정 2020-07-02 03:52


자연 경치를 있는 그대로 모사하는 게 풍경화의 전부는 아니다. 사생(寫生)을 넘어 작가의 개성과 시점, 경험 등 내면적 요소를 반영하기 마련이다. 풍경을 주관적으로 해석한 두 전시회가 눈길을 끈다. 2일 서울 소공로 금산갤러리에서 개막하는 오세중(53) 개인전 ‘Brilliant Point’와 오는 8일 서울 송현동 이화익갤러리에서 시작하는 하지훈(42) 개인전 ‘Landscape-structure 풍경 구조’다. 추상 속에 구상의 요소를 숨은그림처럼 배치해 놓은 게 닮았다.

오 작가는 이번 전시에 제주시와 서귀포를 연결하는 516도로(1131번 지방도)의 숲터널 구간 3.5㎞를 차로 달리며 내다본 창밖 풍경을 그린 유화 18점과 설치작품 2점을 선보인다. 작품 제목 앞에는 모두 ‘Brilliant Point’가 붙어 있는데, 기억 속에 저장돼 있던 여러 풍경 가운데 작품으로 드러난 시점이 바로 ‘빛나는 순간’이란 의미다.

그의 작품에서 풍경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붉은 장미꽃이 스치는 느낌이 확연한 ‘Virgo’(처녀자리)와 노란꽃이 흐드러진 봄 풍경임이 분명한 ‘Aries’(양자리) 정도를 빼고는 풍경의 여러 요소와 색이 혼합돼 실제 풍경을 상상하기 어렵다. Virgo, Aries도 비눗방울이 그림 속에 부유하듯 섞여 있는데, 이는 작가의 주관적 감정이 섞인 흔적이다. 처녀자리는 9월의 풍경인데, 작가가 기억을 떠올리는 실마리인 비눗방울을 서양의 점성술로 9월에 해당하는 처녀자리로 펼쳐놨다. 양자리는 4월에 해당한다.

다른 작품들에선 빨강 파랑 노랑 초록 등 밝은 계통의 여러 색이 섞이고 번져 색채만 남아 있다. 오 작가는 “풍경의 근경 중경 원경이 뒤섞인 상태를 표현한 것”이라며 “추상과 구상의 경계에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금은 속도의 시대여서 그에 맞춰보면 풍경은 정지된 것이 아니라 스쳐가는 것이며 근경 중경 원경이 모두 섞인 기억과 감정이 나를 더 자극한다”고 했다.

오 작가가 스쳐가는 풍경을 화폭에 담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대학(홍익대)을 졸업한 뒤 설치, 인물 등 여러 작업을 거쳐 그림을 배울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찾은 것이 풍경이다. 그는 “그림을 배우러 서귀포에서 제주의 화실로 오갈 때 516도로를 달리며 날마다 봤던 한라산 중산간의 풍경이 생각났다”며 “나의 암묵적 기억에서 되살려낸 ‘감성의 풍경’”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4일까지.

하 작가는 프랑스의 엑상프로방스, 지중해 코르시카섬, 일본 교토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한 기억을 토대로 그린 회화 30여 점을 건다. 영남대 미대를 졸업한 뒤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등에서 공부한 작가의 작품에는 정중앙에 강렬한 색감의 커다란 덩어리가 자리하고 있다. 언뜻 봐선 풍경과는 거리가 멀다. 구체적인 형상을 묘사한 것이 아니라 화려한 색감과 붓 터치로 선과 색, 면이 중첩되면서 만들어내는 커다란 덩어리가 물에 뜬 섬 같기도 하고, 스스로 빛을 발하는 원석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폭포, 냇물, 바다 같은 요소를 군데군데 배치했다.

하 작가는 “여행의 기억에다 책과 뉴스 등 다른 자료를 본 기억까지 더해진 것을 조형적으로 구조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행에서 봤던 자연의 모습은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감정, 정보와 뒤섞여 구체적 모습 대신 의식 속에 모호하게 남아있게 된다. 따라서 풍경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기억과 연관성까지 담아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하 작가는 “모호한 것을 꺼내 여행 당시의 주변 공기, 인상까지 떠올리며 작업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코르시카섬은 남성적인 데 비해 엑상프로방스 풍경은 온화하고 목가적이며 여성적이다. 지난해 작업한 150호 대작 ‘풍경 구조 #1-코르시카’는 바다에 뜬 불덩어리 섬 같다.

또 다른 150호 대작 ‘원석의 섬#43-교토’는 고도(古都) 교토의 사찰들과 밤 이미지 등을 뭉뚱그린 것으로, 작업에 1년 넘게 걸렸다고 한다. 화면에 가득찬 색채의 덩어리 가운데 푸른 창을 내 숨통을 틔운 구도가 절묘하다.

그의 작품에 푸른색 배경이 많고 바다 느낌이 나는 것은 해군 초계기 조종사이던 아버지의 영향이 커서다.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하면서도 항상 바다와 가까운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성인이 된 뒤에도 그는 해안과 섬을 자주 찾아다녔고, 섬과 섬 주변의 풍경이 그의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고 한다. 전시는 28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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