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서울시장(葬)과 자살 예방 캠페인

입력 2020-07-12 17:02   수정 2020-07-13 00:10

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이 확인된 지난 10일 아침, 보건복지부 출입 기자들은 두 통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자살사건 보도가 모방자살 등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주의해달라”는 요지였다. 복지부와 중앙자살예방센터에서 한 통씩 보냈다. 아이돌 가수 등 유명인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면 의례적으로 보내는 내용이다.

하지만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 같은 자살 예방 노력과 상반되는 소식 두 가지를 들었다. 하나는 박 시장의 장례를 서울시장(葬)으로 5일간 열기로 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여당 대표가 장례위원장을 맡으며 소속 국회의원들에게도 조문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그간 자살 예방 노력을 이해하더라도 기자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는 문제가 있다. 박 시장의 죽음은 개인적인 일에 그치지 않는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대한민국 제1도시의 수장이 성추행으로 고발된 직후 자살로 마감했다. 부산시와 충청남도가 기관장 성폭력 사건으로 업무 공백을 겪고 있는 데 이은 것이다. 연예인 자살과는 의미가 다르다. 경찰의 수사 종료로 언론 보도가 아니고는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길도 막혔다.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박 시장 자살에 대해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정부가 기자들에게 요청할 일이 아니다.

정작 우리 사회의 자살 예방 노력에 배치되는 것은 여당과 서울시의 조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비서에 대한 성폭행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지 두 시간도 안 돼 더불어민주당은 “당에서 축출하고 이름까지 영원히 지운다”고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도 사건이 알려진 지 나흘 만에 제명했다. 두 사람과 박 시장의 가장 큰 차이는 자살로, 이후 조사와 처벌이 중지됐다는 점이다. 만 2년 넘게 지속됐다는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는 면죄부가 주어졌고, 민주당은 ‘님의 뜻 기억하겠다’는 현수막을 서울 시내 곳곳에 붙이며 추모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지자들은 “음모를 밝히겠다”며 성추행 피해자의 신원을 알아내는 데 혈안이다.

이같이 극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면 궁지에 몰린 정치인으로선 자살을 선택할 유인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미 자살은 사법 조사나 처벌에 직면한 한국 정치인의 주요 선택지로 떠오르고 있다. 2년 전 드루킹 재판 과정에서 불법 정치자금 수수가 확인된 노회찬 전 의원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시민 운동가와 인권 변호사로 우리 사회에 헌신했던 고인의 삶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성추행 피고소인으로 사건의 규명을 피하기 위해 행한 마지막 선택까지 존중해서는 안 된다. 명복을 비는 것은 개인적인 선에서 충분하다. 여당과 서울시가 나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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